조지 소로스는 글로벌 자금의 흐름을 인체의 혈액순환에 비유했다. 피가 심장에서 나와 신체 말단으로 퍼져나가듯, 투자자금도 통상 풍부하게 자본이 축적된 선진 '중심부'로부터 세계의 '주변부'로 흐른다는 얘기다. 중심부 자본은 이 과정에서 선진국에선 거두기 어려운 고수익을 누린다. 주변부 역시 자본이라는 생산요소를 원활히 공급 받아 더욱 강력한 성장을 시현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이 같은 흐름에 역류(逆流)가 발생한다. 그럴 때 세계경제엔 경련이 일어난다.
▲ 1994년 2월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연방기금금리(FFR)를 3%에서 3.25%로 0.25%포인트 올렸다. 5년 만의 전격적인 금리인상이었다. 걸프전 이래 수년 간 깊은 침체에 빠졌던 미국 경기가 살아남에 따라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했다. 그린스펀은 이후 사상 유례가 드문 연쇄 금리인상 행진에 들어가 95년 2월까지 단 1년 만에 FFR을 애초의 두 배인 6%까지 올려버렸다.
▲ 연쇄 금리인상 전까지 그린스펀은 경기부양을 위해 수년 간 극단적인 저금리정책을 폈고, 유럽도 거기에 동조했다. 그렇게 중심부에서 풀린 막대한 투자자금이 남미와 아시아로 물밀 듯 흘러 들어가 90년대 전반기의 눈부신 성장을 일궜다. 그런데 미국 경기 호전과 연쇄 금리인상이 글로벌 자금 흐름에 거대한 역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미국 저금리 때 월스트리트 자금이 흥건하게 유입됐던 멕시코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됐다.
▲ 연쇄 금리인상은 93년 말 미국보다 8.4%포인트나 높았던 멕시코의 실질금리가 94년 말엔 미국 보다 오히려 0.7%포인트나 낮아지는 금리역전 현상까지 빚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 교체기를 맞아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준동으로 정정불안까지 야기되자 마침내 투자자금이 멕시코에서 대거 이탈해 선진국으로 역류하면서 멕시코사태가 일어났고, 그런 흐름이 확산돼 아시아 외환위기까지 촉발시켰던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조짐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런 전례 때문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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