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저물 무렵, 엄마랑 병원에 갔다. 누구의 병문안이었는지 기억에 없다. 우연히 만난 학교 여 선생님이 건넨 딸기우유부터 떠오른다. 안면이 있던 두 사람은 내 눈치를 살피며 각자 병원에 온 이유를 나눴다. 병실 안쪽에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하얀 물체가 선생님의 아들이란 사실은 병원 문을 나선 뒤에야 엄마에게 들었다. "총을 맞았대. 불쌍하게."
얼마 후 학교엔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그 선생님의 아들이 전남대를 다니는 빨갱이였는데, 광주사태 때 총을 맞았고, 그로 인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났다'는 것이다. 아홉 살짜리 아이의 머리로 당시 쉬쉬하던 사건의 복잡한 인과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다만 그 뒤 선생님을 정말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는 경험은 나머지 다른 설들을 진실이라고 믿도록 강요했다. 작정하진 않았지만 나 역시, 한 엄마의 가슴을 찢어놓았을 그 소문의 전달자 역할을 한 것도 같다. 아마 "난 직접 선생님 아들을 봤다"는 자랑까지 곁들여서.
1980년 5월의 기억은 온통 파편뿐이다. "내일부터 학교 나오지 말라"는 선생님 말씀에 만세를 불렀고, "빨갱이가 잡아간다"는 외할아버지의 경고는 귓등으로 들은 채 TV가 안 나온다고 떼를 썼고, 심심해서 몰래 거리로 나섰다가 "전두환은 물러가라, 을라을라"를 외치는 무시무시한 버스를 봤다. 데모하러 갔다는 막내 외삼촌을 걱정하는 소리도 들었다.
계원들과 나들이간 엄마는 며칠이나 집에 오지 않았다. 동생들과 울다가도 깜빡 잊고 놀았다. 밥을 먹다가 엄마 생각이 나 다시 울었다. 외할아버지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데" 혼잣말을 하면 영문도 모른 채 또 울었다. 훗날 엄마는 "관광버스 운전 기사가 기지를 발휘한 덕에 공수부대원들을 피해 숨어 있었다"고 했다. 한참 지나 막내 외삼촌도 돌아왔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 80년 5월 16일부터 열흘간은 아슬아슬한 삶의 고비였을지언정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 바깥의 그 해 5월을 마주한 건 9년 뒤다. '참교육'의 기치를 내건 교사들이 학교에서 쫓겨나자 고등학생이던 나와 학우들은 거리로 나섰다. 문예운동에 동참하면서 광주 관련 비디오테이프, 자료집 등을 챙겨볼 수 있었다. 시골에서 광주로 진학하기 전까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끔찍한 역사의 진실 앞에 분노했고, 그간의 무지와 무관심이 죄스러웠다.
그제서야 엄마에게 물었다. "그 선생님 아들은 어떻게 됐어?" "죽었지." "선생님은 그때 왜 학교를 나간 거야?" "학교에서 그만두라고 했나 봐." "근데 왜 말 안 해줬어?" "네가 너무 어렸잖아. 또 그때는 함부로 말할 상황도 아니었고. 불쌍하지, 독자였다고 하던데. 그래도 넌 너무 깊이 알려고는 하지 말거라."
그날 덜덜 떨며 울었다. 10년 가까이 내 의식 속에서 빨갱이라 낙인 찍혔던 그가 가여워서, 그가 빨갱이란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뜨린 누군가가 증오스러워서, 그날 병원에서 얼굴이라도 살피지 못한 게 아쉬워서, 당시 난 나이가 어렸다는 핑계를 댈 수 있다는 게 부끄러워서.
다시 5년이 지난 여름, 군 제대 후 막노동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80년 봄날에 살아남은 자를 만났다. 땅이 꺼질 듯 심하게 저는 오른쪽 다리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그는 가끔 일터에 나오지 않았다. "날이 찌뿌등하믄(흐리면) 총 맞은 자리부터 삭신이 쑤싱게." 그리곤 삿대질을 하며 "오살할 놈"이라고 핏대를 세웠다. 자기의 6일치 벌이 29만원으로 잘도 사는 그 분을 향해.
내 기억이 파편이라면 은 그 해 5월 광주의 거의 모든 기록이다. 자료집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흡사한 군상이 각자의 시점에서 증언하는 그날의 기억은 시간과 공간의 치밀한 씨줄날줄로 엮이며 거대한 깃발이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삼형제가 아니라 오히려 20여명의 화자들이다.
최근 어떤 네티즌들은 광주의 봄날과 희생을 제멋대로 능욕하고, 일부 방송사는 새터민까지 끌어들여 광주를 왜곡하고 있다. 초등학생 아이도 훗날 진실을 맞닥뜨리고 참회했건만, 그들의 악의와 철없음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로마서 16장 19절)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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