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를 딛고 2010년 이래 10%대 고공성장을 해온 세계 명품시장이 올해 성장률 4~5%에 그치며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세계 명품의 25%를 구입한다는 큰손 중국이 급작스레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매년 30~50%를 기록했던 중국의 명품소비 성장률은 지난해 7%로 뚝 떨어졌다. 경기 침체에 더해 새로 출범한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뇌물 단속 강화가 요인으로 꼽힌다.
조종(弔鐘)은 중국 시장 곳곳에서 울린다. 고급음식점 체인 샹어칭(湘鄂情)의 1분기 샥스핀(상어 지느러미) 요리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70% 줄었다. 스위스제 시계 수입은 24% 떨어졌고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수입량도 급감했다. 홍콩 출신 여배우 장만위(張曼玉)의 연인이었던 중국 보석 브랜드 퀼린의 사장 기욤 브로샤르는 “놀랍던 황금기는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안이 간단치 않다. 홍콩에서 설립된 163년 전통의 고급백화점 레인크로포드는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 매출이 전혀 둔화된 바 없다”고 말한다.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1분기 중국 판매가 20% 신장했다. 자가용 항공기 판매도 급등세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명품시장이지만 이곳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시기는 끝났다”고 진단했다. 작금의 중국 명품시장 상황은 침체가 아니라 재편이라는 것이다.
중국인의 구매력이 건재하다는 점이 그 근거다. 중국 명품 내수시장의 성장률이 둔화한 것은 주소비계층인 부유층이 해외 특히 위안화가 강세인 유럽에 나가 명품을 사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위스 시계·보석 브랜드 피아제의 최고경영자 필리페 레오폴드 메츠거는 “중국 매장은 수익을 내는 곳이라기보다는 해외에서 명품을 사는 고객을 위한 전시장”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통계로 확인된다. 지난해 중국인들의 해외여행 건수는 8,300만건으로 전년보다 18.4% 증가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는 지난해 중국인이 해외에서 명품 구입에 쓴 돈이 전년보다 37% 늘었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난해 중국 고객의 택스리펀드(세금 환급) 액수가 249억위안(39억달러)으로 전년 대비 58%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택스리펀드는 해외 관광객이 면세점 아닌 매장에서 구매할 경우 부가세 등 내국인 적용 세금을 돌려주는 것을 뜻한다.
중국 내수 또한 확대될 여지가 크다. 부유한 해안지역에 사는 기존 명품 고객들은 불경기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개발이 한창인 내륙지역에서는 새로운 중산층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1,700여개 점포를 둔 보석회사 저우다푸(周大福)의 켄트 왕 경영담당 이사는 “해안지역 매출이 부진하지만 전체 매출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명품기업협회 알타감마의 아르만도 브랜치니 회장은 “소규모 내륙 도시에서는 화려한 디자인의 명품을 찾는 반면 해외여행을 통해 안목을 키운 고객들은 섬세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추구한다”고 지적했다.
결론은 중국시장 침체론이 명품 구매자 분화에 따른 착시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에서 새로운 유형의 고객과 틈새시장을 발굴하고 신사업모델을 시도해야 할 때”라고 명품업계에 제언했다. 그러면서 중국인의 3분의 2가 인터넷에서 명품 브랜드를 검색하는 현실을 도외시한 채 홈페이지에 위안화 결제시스템은커녕 위안화 표시 가격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글로벌 명품회사들의 무성의를 꼬집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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