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전성시대6개월 만에 1000여개 우후죽순MB정부서 조합법제정 아이러니다른 협동조합간 연합회 금지금융·보험부분 제외는 아쉬워협동조합에 대한 오해정부·지자체 지원 기대심리는 毒갈등해결 훈련 없이 설립 땐 좌초꿈·이상 못잖게 중요한 것은 교육'중산층 이상의 사치' 비판 딜레마그들만의 구매력 기반으로빈민자활 등 영역 확대 노력해야조합원 간 소통 어려움도 있지만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훈련재분배 넘어 호혜의 기능 넓혀야
은퇴자협동조합, 지식협동조합, 예술협동조합, 주택협동조합, 햇빛발전협동조합…. 이름도 생소한 협동조합 결성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협동조합은 1인 1표의 의결권을 바탕으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발적인 연대조직이다. 그동안은 농협, 수협 등 8개 개별법에 의해서만 설립이 가능했는데,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금융과 보험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5명 이상이면 출자금의 제한 없이 설립할 수 있게 됐다. 6개월 만에 벌써 1,000여개가 설립 인가를 받았다니, 가히 '협동조합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속도전' 양상을 보이는 협동조합 설립 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내 대표적인 협동조합운동 활동가이자 이론가인 윤형근(50) 한살림성남용인생협 상무가 최근 (그물코 발행)을 펴낸 것도 그런 우려에서다. 그는 200년 세계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에 돋을새김 된 이들의 사상과 실천을 소개한 이 책에서 "협동조합이 한 시절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떤 전망과 어떤 정신을 가져야 하는지 끊임없이 정체성을 묻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일 서울 장충동 한살림서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협동조합 운동의 역사와 현재, 미래 전망에 대해 들었다.
-협동조합운동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
대학(연세대 국문학과 82학번)에 갈 때만 해도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 시절 다들 그랬듯이 시위 나가 돌도 던지고 했지만, 무척 소심했던 제게는 학생운동이 좀 억압적으로 느껴져 회의가 들더군요. 그 무렵 한살림생협의 모태인 무위당 장일순, 김지하 선생 등의 생명사상을 접했는데 굉장히 신선했어요. 대학원 시절부터 '한살림모임'을 들락거리며 일도 돕고 공부도 하다 방위를 마친 뒤 아예 눌러 앉았죠. 그때 월급이 20만원쯤 했어요. 아버지 덕에 먹고 살만은 하니까 제 멋대로 하고 싶은 일 하고 살 수 있었던 거죠.
-기껏 공부시켜놨더니 제 밥벌이도 못해 부모님이 억장이 무너지셨겠어요.
황당해 하셨죠. 특히 아버지는 농사 짓기 싫어 죽자고 공부해 공무원이 되셨거든요. 그 짓 때려치우지 않으면 당신이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도 하시고.(웃음)
국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맏형 격인 한살림생협은 전국 21개 지역생협으로 구성돼 있다. 5월 현재 조합원 수는 36만6,000여명이며, 지난해 매출 2,500억원을 기록했다. 시작은 초라했다. 원주에서 생명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유기농산물 직거래를 위해 86년 12월 서울 제기동에 낸 쌀가게 '한살림농산'이 첫 출발. 한살림생협은 88년 4월 창립했다.
한살림모임은 생협 운동의 이론적 토대와 지향점을 제시하는 연구모임으로, 89년 10월 설립 당시 동학사상을 재해석하고 서구의 녹색운동을 접목한 '한살림선언'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윤 상무는 "한살림이 획기적인 것은 우주와 생명이라는 거대담론에 기반하면서도 구체적인 일상, 삶의 문제인 '밥'을 매개로 한 생활협동운동을 통해 세계를 바꿔나가는 운동 방식을 설정한 것"이라면서 "특히 생명을 기르는 주체이면서도 과거에는 그 역할이 폄하됐던 농민과 여성을 운동의 주체로 부각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생협 조합원이 급격이 늘고 있는 이유가 뭔가요?
성장세가 가장 가팔랐던 때는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예요. 먹을거리 사고가 빈발하고, 아토피, 천식, 비염 같은 면역결핍질환이 크게 늘어난 것이 가장 큰 계기였어요. 생필품을 값싸게 공급하는 구판장 형태의 기존 생협은 90년대 중반 대형 슈퍼마켓, 할인마트가 잇따라 생기면서 다 망했어요. 그 와중에 한살림형 생협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친환경 농산물 등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줬기 때문이죠. 과거 지역단위로 물품을 조달하던 생협들이 한살림이나 아이쿱처럼 연합체를 만들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것도 급성장의 기반이 됐죠.
-요즘 '갑의 횡포'가 이슈인데, 생협에 물품을 대는 생산자들도 불만이 꽤 있는 듯해요.
생협은 소비자가 주축이 되다 보니 생산자 쪽에서 불만이 전혀 없을 수 없죠. 한살림은 운영 방식이 좀 독특해요. 지역조합의 이사회 15명 중 2명은 생산자 몫으로 하고, 연합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생산자 대표들을 적극 참여시키고 있어요. 물론 소소한 잡음은 있지만, '갑의 횡포'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에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생산자들도 협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게 된 것도 환영할 만한 일이죠.
-얼마 전 한살림햇빛발전협동조합이 결성됐던데 지역 생협과는 다른 조직인가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 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잖아요. 경기 광주에 있던 물류센터를 안성으로 옮기면서 지붕에 350Kw짜리 햇빛발전소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한살림 자금으로 하면 비용이 되니까 별도의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원래 9억원이 목표였는데, 비조합원들까지 참여하면서 12억원이 모였어요. 최근 지역 아이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사랑협동조합도 만들었어요. 생협의 규모가 커지면서 조합원들의 의식도 성장해 지역에 필요한 일들을 협동조합으로 꾸려낼 수 있는 자발적인 역량이 높아진 덕이죠. 시간제 정규직 형태로 엄마들을 위한 일자리를 늘리는 데도 좋은 방법이라고 봐요. 생협 주변에 이 같은 소규모 협동조합이 많이 생겨나면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나 캐나다의 퀘벡처럼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협동조합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어요. 일본에서는 '워커즈 컬렉티브'라 부르는 소규모 협동조합이 굉장히 활성화돼 있는데, 근거 법이 없어 NPO(비영리민간단체) 자격으로 활동해요. 우리는 협동조합기본법 덕에 5명만 모이면 뭐든 할 수 있으니 날개를 단 셈이죠.
-전문가들이 다들 협동조합기본법이 이렇게 빨리 만들어질 줄 몰랐다고 하더군요.
저도 놀랐어요.(웃음) 아주 냉정하게 얘기하면 사회서비스를 값싸게 해결하기 위해서 만든 거죠. 복지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는데 감세 정책 등으로 인해 재원은 부족하고, 그렇다고 기업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쟁을 극단적으로 심화시키고 사회적 약자들을 사선으로 내몬 이명박 정부에서 이런 법이 만들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예요. 사회적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협동의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니 좋은 일이긴 한데, 사실 걱정이 앞서요. 협동조합은 자발성과 자율성이 생명인데, 갈등이 생겼을 때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 이를 해결할 훈련이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조합부터 만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어요. 정부나 지자체들도 성과주의에 매몰돼 있는 것 같아요. 이러다가 얼마 안돼 70,80% 정도가 망해 나가면, '협동은 역시 안 되더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돼 모처럼 마련된 기반마저 잃게 될까 봐 큰 걱정이에요.
-협동조합을 하려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혹은 오해는 뭘까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에 대한 기대심리가 큰 것 같아요. 협동조합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토양은 시장에서 돈으로 해결되지도 않고 정부가 아무리 애써도 성과가 나지 않는 영역, 다시 말해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가 드러난 지점이에요. 물론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만큼 공적 지원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거기에만 기대면 오래 갈 수 없어요. 섣부른 지원도, 그에 대한 기대심리도 독이 될 수밖에 없어요.
-독이 되는 지원과 약이 되는 지원은 어떻게 구분되죠?
자금의 직접 지원은 안 돼요. 자금을 빌려주더라도 투자기금을 만들어 중소기업과 같은 수준의 저리로 빌려주라는 거예요. 또 농협이나 신협 연합회의 법인세율이 9%인데, 생협 연합회는 일반 기업과 똑같아요. 이런 역차별을 없애 달라는 거예요.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당부하고 싶은 말은 뭔가요?
제가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 실무에 관한 강의를 하러 갈 때마다 참석자들에게 꼭 묻는 말이 있어요. "도대체 이렇게 어려운 걸 왜 하시려고 해요?" 제대로 하려면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절실한 이유,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과 이상을 조합원들과 공유하는 작업이 제일 중요해요. 한때 귀농이 붐을 이루다 70, 80% 이상이 유턴했잖아요. 막연히 농사 짓고 전원생활 즐기겠다는 생각만 했지, 돌아갈 지역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거예요.
은 그런 의미에서 초심자들이 실무지침서에 앞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윤 상무는 협동조합의 선구자들이 어떤 꿈과 이상을 갖고 출발했는지, 그걸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했는지 찬찬히 풀어놓았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려면 꿈과 이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것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게 하는 교육과 학습이다. "스페인 몬드라곤의 기적이 가능했던 것도 교육의 힘이에요, 호세 마리아 신부는 협동조합이 교육의 기초 위에 세워질 뿐 아니라 협동조합 자체가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었죠."
책은 성공한 협동조합들이 처한 딜레마도 심도 있게 다룬다. 60~70년대 협동조합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유럽 몇몇 나라에서는 대기업을 능가하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결사체적 성격이 점차 사라지고 조합원의 참여 없는 직원 중심의 경영이 확산됐고, 아예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8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7차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세계대회에서 발표된 레이들로 보고서는 이를 '정체성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레이들로 박사는 협동조합이 새로운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식량 문제 해결, 일자리 창출,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 협동조합 지역사회 건설 등 네 가지 과제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에겐 아직 요원한 얘기지만, '사업'과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협동조합의 미래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문제는 없나요? 금융, 보험이 빠진 것을 지적하는 분들이 많던데.
맞아요. 금융 부문이 빠진 것은 피를 돌게 하는 심장이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예요. 이종 협동조합간 연합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도 큰 제약이에요. 협동조합 생태계가 형성되고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협동조합 내부의 협동뿐 아니라 협동조합들간 협동도 중요하거든요. 또 협동조합,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경제의 여러 주체들을 관할하는 부서가 각기 다른 것도 문제예요. 총리 직속으로 시민사회청을 두고 있는 영국의 경우처럼 사회적 경제 섹터를 한데 아울러 큰 그림을 그리고 지원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봐요.
-최근 광주에서 아이쿱생협이 한살림 매장 근처에 잇따라 매장을 개설하면서 다툼이 벌어졌죠. 협동조합이 확산되면 유사 사례가 빈발할 수 있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장기적으로는 전국생협연합회를 만들어 매장 거리 조정 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생협법상 연합회를 만들려면 등록된 생협의 절반 이상이 참여해야 하는데, 문제는 생협을 가장한 유사 의료생협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서로 지향하는 가치가 좀 다르다 보니 갈등이 벌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데, '협동한다는 사람들이 뭐 저래?'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피해야죠. 지역에서는 경쟁을 하더라도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 문제에는 공동 대응하는 등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죠.
-생협 운동을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의 사치'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트위터 '한살림 옆 대나무숲' 계정을 보니 한살림에 납품하는 공장에서 일한다는 사람이 '내 월급으로는 한살림 물건 못 사먹는다'는 하소연을 올리기도 했던데.
여러 비판이 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중산층 이상의 운동 아니냐는 것이었어요. 물론 그런 측면이 있죠. 하지만 운동의 확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봐요. 한살림은 초창기부터 청계천 이주민들이 정착한 시흥 복음자리마을의 딸기잼이나 허병섭 목사가 이끄는 동월교회의 미숫가루를 구매해 빈민들의 자립기반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어요. 작년에는 여성노동자회, 작은차이 봉제조합과 함께 면 기저귀 사업을 벌였고요. 중산층이 갖고 있는 구매력을 기반으로 이런 영역들을 지속적으로 넓혀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봐요. 납품 공장의 급여 문제도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예요. 생산자들도 방어적으로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이런 문제를 이슈화 해서 여론을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생협 문외한인 저 같은 사람들은 그런 문제들을 조합원들간 소통을 통해 일일이 해결해야 하는 수고를 견디느니 마트 가서 싸구려 사먹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협동조합은 스스로의 절실한 필요를 해결하려고 만든 조직이니까, 그 필요가 의사소통 비용보다 크다고 생각하면 그 조직은 돌아가는 거죠. 그게 민주주의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다음엔 바로 그런 얘기를 책으로 쓰고 싶어요. 제목은 이라고 정해놨어요. 나 혼자가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합의해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기본이잖아요. 협동조합은 그걸 배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비록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앞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거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협동조합이 시장경제를 상당부분 대체하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보나요?
경제사상가 칼 폴라니는 경제활동을 교환, 재분배, 호혜로 나누고, 시장경제는 교환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잖아요. 전통적인 사회운동에서는 재분배 영역이 교환 시장 영역을 제어해야 한다며 국가의 역할을 강조해 왔고요. 제 생각에는 협동조합과 같은 호혜 영역이 커지면서 이 세 영역이 적당하게 균형을 잡는 지점이 존재할 거라고 봐요 시장경제를 압도하는 '협동조합 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저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봐요. 우선 국가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부터 잘 챙겨야죠.
특히 지역 공동체에서는 호혜 영역?강화돼야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어요. 성미산 마을이나 원주가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그거죠. 시장은 지역에서 생산한 부를 자꾸 밖으로 빼가 버리잖아요. 돈도 그 안에서 돌고 고용 창출도 일어나려면 대기업을 유치하기보다 중소기업과 협동조합을 키워야 해요. 예전에는 지방에 강의하러 가서 이런 얘기를 하면 못 알아들었어요. 그동안 워낙 당해서 이제는 "지역에서 돈이 돌아야 한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해요. 그만큼 절실하다는 얘기죠. 여러 번 강조했지만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와 간절한 열망이 응축된 지점에서 협동조합의 길이 열린다고 봅니다.
이희정 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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