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신의 영국 언론인이자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은 유럽 여행 체험을 담은 이라는 책에서 프랑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국 기업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것 세 가지를 물었다. 대답은 정원에 두는 못생긴 요정 조각상, 자동차 유리에 매다는 주사위, 그리고 프랑스 사람. 브라이슨은 여기에 자신의 프랑스 여행 경험을 덧붙여 프랑스는 질서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나라라는 혐오를 늘어놓는다.
유럽의 대륙과 섬나라, 프랑스와 영국은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다. 크고 작은 전쟁을 숱하게 겪었고, 브라이슨이 느낀 대로 같은 서구권이지만 정말 문화도 다른 모양이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루아(1885~1967)가 쓴 가 오랫동안 명성을 얻는 것은 아마도 이런 배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 사령부의 연락장교로 영국에 파견돼 각계 각층의 인사들과 접하면서 영국인들의 인성과 사고 방식이 프랑스와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거기서 더 나아가 프랑스인들 대다수가 이런 영국의 실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프랑스인으로서 영국의 역사를 서술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이다.
모루아는 이 책에서 프랑스인들이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사람은 살 수 없고 오직 마귀만 사는 머나먼 북쪽의 극지'로 여기던 영국이 어떻게 18, 19세기에 '유럽 대륙의 어느 국민도 누릴 수 없었던 고도의 국내적 자유를 획득하고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했는지를 해명해나간다. 그리고 프랑스가 거의 100년에 걸쳐 숱한 희생을 감수해가며 쟁취한 민주주의를 영국은 어떻게 피 한 방울 뿌리지 않고(명예혁명) 일궈 낼 수 있었는지 분석한다.
모루아는 영국의 장점으로 지속성과 순응성, 섬나라라는 지리적 조건을 꼽았다. 지속성과 순응성이라는 영국만의 독특한 특징 때문에 영국에서는 프랑스처럼 혁명 없이도 평온한 사회적 발전이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벗어난 섬나라여서 로마 가톨릭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도 영국에는 은혜였다.
영국의 역사를 해석하는 데는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책은 영국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프랑스 작가가 호의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화제를 불렀다. 국내에서도 몇 차례 출간됐다 절판된 것이 다시 나왔다. 사족이지만 일본인이 쓴 이런 한국사, 한국인이 쓴 이런 일본사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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