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평소 불화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 저에게 원하는 게 무언지 말씀해보세요." 어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씀하셨다. "나를 위해 기도해줬으면 좋겠다. 그것밖에 원하는 게 없다."
어머니가 당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씀하시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에게 기도는 삶의 문법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당신이 불화하는 아들에게 당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신 것이다. 그건 앞으로는 반복되지 않을, 다시 말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불행한 일이지만 어머니와 나는 서로의 눈을 잘 바라보지 못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되었다. 나는 그래서 예전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어머니의 눈과 나의 겨드랑이는 내게 한 번도 자세히 관찰된 적이 없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날, 어머니의 집을 나와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나는 자주 차선을 바꾸었고, 휴게소에 들르지 않은 채 신경질적으로 속력을 높였다. 내 슬픔에도 기원 같은 게 있다면 이런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뒤늦게 그것이 아프다는 것.
소설가 김도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