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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게 만드는 지루한 결속, 결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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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게 만드는 지루한 결속, 결혼에 대하여

입력
2013.06.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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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부부'라는 표현은 사실상 형용모순이거나 기껏해야 익숙하고 오랜 우정을 일컫는 일종의 완곡어법이다. 2010년 갑작스런 이혼 발표로 충격을 줬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부부를 생각해보라. 당시 이 잉꼬부부의 결별 원인을 찾는 데 혈안이 된 언론은 고어의 불륜설부터 아내 티퍼의 '자아찾기론', 심지어 평균수명 확장으로 인한 '황혼이혼 불가피론'-한 사람과 해로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어졌다는 이론-에 이르기까지 각종 분석을 쏟아냈다. 그래서 오늘날 정설로 판명된 이혼 사유는? 부부 사이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세속의 지혜만이 유효할 뿐이다.

미국 소설가 제임스 설터(88)가 1975년 쓴 장편소설 은 결혼관계의 내파(內破)라는 거의 필연적이고도 보편적인 현상에 대한 장대하고도 예리한 분석보고서다. 오늘날 미국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설터는 세련되고도 정확한 문장, 지적인 통찰과 영상 장르에 버금갈 만한 생생한 묘사로 흔히 '작가들이 칭송하는 작가'로 불린다. 국내에는 지난해 번역돼 호평을 받았던 단편집 에 이어 두 번째 소개되는 책이다.

소설은 40년 가까운 시차가 무색할 정도로 오늘날의 일반적 결혼 생활과 다를 바 없는 풍속화를 펼쳐 보인다. 상당히 성공했지만 누구나 다 알 만큼 유명하지는 않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갖고 있는 건축가 비리 벌랜드와 요리 중 레시피를 읽기 위해 고개를 숙일 때 가장 아름다운, 긴 목에 키가 큰 우아한 미인 네드라 부부가 주인공. 소설은 두 딸을 키우는 이 부부의 사반세기에 가까운 혼인 파탄의 과정을 그린다. 부부 동반 모임이 많은 미국 문화를 반영하듯 묵직한 소설의 상당 분량을 수많은 커플들이 만나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장면들로 채우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물들 간에 우정이 생겨나고,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복수의 혼외 관계가 형성된다.

하지만 혼인 관계의 파탄에 있어 외도는 많은 경우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다. 남들의 눈에 이 부부는 완벽하지만 이들의 결혼에는 이미 실금이 잔뜩 갔다. 비리는 '붕괴는 시작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국면에 이르러야만 벽에 균열이 보이고 기둥이 쓰러지고 건물의 앞면이 내려앉는다'고 생각하고, 네드라는 '행복한 부부란 건 지루해. 그건 거짓말이야'라고 울부짖는다.

다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자면, 소설은 외도와 배신으로 점철된 결혼의 모순적 상황을 묘파하는 데 절반, 자식에 대한 깊고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는 데 절반을 할애한다. '모든 사랑 중에 이것이 진정한, 최고의 사랑'이라고, '소모되거나 사라질 수 없는 유일한 사랑이었다'고, 20여 년에 걸쳐 남편과 아내 모두 뜨겁게 토로한다. 결국 이혼한 후 비리는 슬픔 속에서 '그가 정작 원했던 단 한 가지는 아이들이 가장 행복한 집에서 자라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비극은 이런 것이다. '남이었다면 무척 사랑했을 매력적인 사람'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는 견디기가 힘들다는 것. 게다가 생의 유일한 사랑인 자식은 결혼이라는 제도와 불가분이라는 것. 로마에서 20대 여인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다시 결혼 제도에 포섭된 비리는 '결혼 제도가 우습고 싫어도, 그게 없다면 모두 덧없고 모두 헛일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내재적 모순과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직까지도 공고하게 존속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칼날 같은 비유와 직관적인 묘사로 사람들의 속성을 간파해내는 솜씨를 보여준다. '그에겐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의 체념의 기운, 중독자의 차분함 같은 것이 있었다'거나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 소용도 없는 과목을 공부하는 사람의 시무룩함이 있었다'는 식이다. '멀리 새로 놓은 다리가 한 줄의 선언처럼 빛났다. 편지에서 사람을 흠칫 멈추게 하는 문장처럼' 같은 아름다운 문장들도 즐비하다. 제임스 설터, 뒤늦게 당도한 길보(吉報) 같은 작가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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