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긴 몰라도 소설이란 문학 장르가 탄생한 이래 사기꾼은 난봉꾼과 더불어 가장 많이 등장한 캐릭터가 아닐까? 숱한 이야기에서 교묘하게 짠 허위의 그물을 던져 사람들을 꼬여내는 사기꾼은 인간들의 허황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동시에 온갖 악을 부추기고 실행하는 집행자 노릇을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십 수 권의 책이 전 세계 29개국에서 2억 5,000만부 팔린 덕에 출판 시장에서 그 이름이 브랜드처럼 통하는 저자는 이런 이야기의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한층 진화된 모습의 사기꾼을 그려냈다.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질러 5년째 1급 교도소에 수감 중인 마흔 세 살의 전직 변호사 맬컴 배니스터가 바로 그다. 수감 생활 8개월 만에 아내로부터 이혼을 통고 받은 그는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연방 판사가 살해되는 사건이 나자 범인으로 마약 거래상 쿠인 쿠커를 밀고한 대가로 석방된다.
주인공이 감옥에서 나와 정부로부터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받기까지 간결하고 빠르게 진행되던 이야기의 흐름은 이후 독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쪽으로 흘러간다. 전신 성형수술을 하고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받은 현상금 15만 달러와 합법적인 새 신분증으로 전혀 딴 사람이 된 그는 4년 전 의뢰인으로 만났던 네이선을 찾아가 사기 행각을 벌인다. 영화 촬영을 미끼로 네이선을 속여 자메이카로 데려간 그는 위조 여권과 마약 소지 혐의로 네이선이 구속되게 만든다.
맬컴이 2년 동안 감옥에서 구상한 이 모든 사기극의 전말은 소설의 마지막 장에 가서야 낱낱이 밝혀진다. 네이선이 살해된 포시트 판사의 집에서 850만 달러짜리 금괴 570개를 훔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맬컴은 감방 동료인 쿠인 쿠커와 모의해 한 편의 완벽한 사기극을 완성한 것이다. 여기에 캐나다 광물 업체에게 약 200억 달러에 달하는 우라늄 광산 채굴권과 관련해 유리한 판결을 해 준 대가로 뇌물을 받아 집에 숨겨놓았던 포시트 판사의 위선이 드러나며 이야기는 결말로 줄달음친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로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하면서 전혀 다른 듯 보이는 이야기를 하나로 꿰어가는 작가의 솜씨는 녹슬지 않았다. '진짜 사기꾼은 거대한 힘을 바탕으로 선량한 시민들의 자유와 부를 빼앗는 정부와 FBI, 연방법원이 아닌가?'라는 작가 특유의 사회 의식도 적당히 버무려져 있다. 하지만 사기꾼을 매력적인 사기꾼으로 만들어주는, 주인공의 행위에 대한 동기 부여와 완성도는 전작들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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