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갱스터 영화에서나 들었음직한 외래어 하나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원자력 마피아'. 한국 원전의 가장 커다란 문제가 학맥으로 촘촘히 얽혀 있는 매우 좁은 '전문가 집단'에 의해 폐쇄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원전 정책과 산업의 핵심을 이루는 '미래창조과학부',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그리고 원전의 안전점검을 담당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전문가들이 모두 서울대, 카이스트 등의 특정 학맥으로 얽혀 있다고 한다. 원자력과 같은 거대 위험기술이 폐쇄적 집단에 의해 계획 개발되고, 운영된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전문가 집단을 그 악명 높은 이탈리아 갱 조직인 마피아에 비유할 수 있단 말인가.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도 공무원이고,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집단도 관료조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관료 '마피아'라는 낱말은 단순한 과장처럼 들린다. 우리 국민 모두가 선망하는 최고의 엘리트들이 마피아라니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우리가 탐욕스러운 관료집단을 마피아라고 비난하면서도 이런 의문이 깊어지는 까닭은 우리사회가 여전히 가방끈을 너무나 중시하는 학벌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피아는 전문가 집단의 폐쇄성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단순한 외래어가 아니다. 마피아는 온갖 사회적 불의의 온상이 되고 있는 우리 학벌사회의 현주소이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제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최고의 학벌을 가진 지식인 전문가집단이 국민의 생명을 놓고 장난치는 범죄자 집단으로 변한 것인가? 원자력을 기획 개발하거나 점검하는 전문가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놓고 보면,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그들의 상식과 양심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식과 능력에 있어서는 그럴 것이다. 모두 좋은 대학에서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 소위 말하는 식자(識者)층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엘리트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기에 최소한의 양심도 져버리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것일까? 그들은 사회에 나가 써먹을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배웠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성과 양심은 배우지 않은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도 쉽게 내릴 수 없다면, 가능한 답은 한 가지다. 전문가들 개개인은 능력도 탁월하고 도덕성도 괜찮을 수 있지만 하나의 폐쇄적 집단을 이루면 이상한 사람들로 변하는 것은 집단논리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봐주는 폐쇄적 집단이 바로 '마피아'이다. 마치 하나의 가족처럼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마피아가 지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현대 한국사회의 관료마피아는 학연을 통해 형성된다. 그들은 특정 분야의 지식을 토대로 정책 개발에서 집행, 평가와 통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독점하여 '끼리끼리 뒤 봐주기' 문화를 형성한다. 폭력이 아니라 지식을 수단으로 삼고, 지연과 혈연이 아닌 학연을 끈으로 삼기 때문에 이들의 폐쇄성은 더욱 교묘하고, 범죄성은 더욱 교활하다. 이처럼 지식을 토대로 사회에 중요한 모든 것을 독점하여 사적 이익을 취하는 21세기 한국사회는 '식자독식'(識者獨食) 사회이다.
식자독식 사회는 그야말로 배운 사람들이 다 해먹는 사회다. 이 사회가 무서운 까닭은 배운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마치 국민 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위장하는 천부적인 재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전문가 집단이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외래어 마피아의 어원을 생각해 본다. 마피아(mafia)라는 낱말은 본래 은신처를 제공하는 동굴이라는 뜻의 시칠리아 방언 마피에(mafie)에서 왔다고 한다.
동굴 속에 갇힌 인간은 대개 자신들이 본 그림자만을 진리라고 여기면서 오류를 저지른다. 식자독식 사회를 구성하는 전문가 집단은 이런 동굴의 우상을 숭배하는 학벌 집단이다. 이들을 동굴로부터 끌고나와 특정분야의 '지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성'이 아니라는 점을 따끔하게 가르쳐줄 수는 없을까?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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