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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6월 14일] 잠든 전쟁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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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6월 14일] 잠든 전쟁의 신

입력
2013.06.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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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경 네덜란드 화가 야코프 더헤인은 로마신화의 전쟁 신 마르스를 소재로 판화를 제작했다. 그림의 분위기는 음영이 강해 침울하며 비장하기까지 하다. 해서 그 판화는 어떤 불안, 불길한 징조, 불온한 의도를 느끼게 한다. 당시는 역사가들이 최후의 종교전쟁이자 최초의 국제전쟁으로 평하는 '30년 전쟁'이 신성로마제국의 근거지였던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으로 확전되던 때다. 신화적으로 말하면 전쟁의 신이 광포한 창칼을 휘젓던 즈음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더헤인의 판화에서 마르스는 고치 속의 누에처럼 망토로 겨우 몸을 감싼 채 불편한 잠에 빠져있다. 게다가 노쇠한 군인마냥 쪼그라든 그의 발 앞에는 칼과 갑옷이 늘어져 있고 투구 또한 하릴없이 막대 위에 걸쳐져 있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분위기다. 현실에서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 종교 분쟁이 네덜란드까지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지만, 작품에서 전쟁은 그 파괴적 힘을 잃고 무력해진 상태로 묘사된 것이다. 화가는 그렇게 시각적으로 전쟁의 중단과 평화의 도래를 표현했다. 헌데 화가에게 그 메시지는 작품의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넘어 당대인들의 절박한 염원이자 모두가 분명하게 공유해야 할 사회적 의제였던 것 같다. 지나치게 어두워 보이는 그림을 두고 사람들이 의미를 혼동할까 걱정스러웠는지 그는 하단에 다음의 문구를 적시했기 때문이다. "마르스가 최고의 영광을 누린 후 쉬고 있다.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그가 더 영광스럽게 쉴 수 있기를." 죽음과 전쟁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내려놓고 안식함으로써 영광을 획득하는 마르스라니! 더헤인의 판화는 이런 역설을 구사하여 그 뒤로도 수십 년간 이어진 30년 전쟁은 물론 지구상에서 단 한 순간도 완전히 사라진 적 없는 전쟁의 광기를 속이고 싶었는지 모른다. 혹은 그 전쟁의 무자비한 부지런함을 잠재우고 싶었는지도.

알다시피 6월 6일 현충일이 들어있는 6월은 우리 사회에서 '호국 보훈의 달'로 통한다. 내가 기억하기 전부터, 당신이 알기 전부터 이미 6월은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추념하고 보훈가족을 위로하며 서로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시기로 굳어졌다. 어린 기억에 이즈음이면 곳곳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TV에서는 현충원의 참배객과 거수경례하는 군인의 모습이 번갈아 비쳤으며, 애국 실천을 역설하는 대통령 연설이 마음을 울렸다. 뻔한 말이 되겠지만, 그 일련의 일들은 과거 언젠가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 현재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은 물론, 언제라도 전쟁이 이곳 한반도를 덮칠 농후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런 한국현대사 과정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자 현재도 생물처럼 살아있는 뇌관이 '6ㆍ25전쟁'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53년 7월 27일 정전(停戰) 협정 체결. 이후 60년이 흐른 2013년 현재까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나뉜 채 크고 작은 분쟁으로 갈등과 대치 국면 지속. 아주 짧게 요약하면 이것이 남한과 북한의 현대사고 현재다. 이렇게 날짜를 쭉 늘어놓으면 우리가 현대사의 대부분을 정전 상태, 즉 전쟁을 일시 정지시킨 상태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명시적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전쟁의 신 마르스가 졸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졸음 속에서 얻은 한반도의 평화란 얼마나 얕고 위태로운가. 이를 최근 몇 년 사이 단절된 남북관계가 실감나게 일깨운다. 심지어 3월에는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라는 막무가내 카드를 내놓으면서 일촉즉발의 사태까지 야기되는 듯 했다. 다행히 며칠 전 '남북 당국회담' 논의를 계기로 긴장이 풀려가는 것 같았으나, 이내 회담을 하루 앞둔 오후 '무산'으로 또다시 상황은 악화돼버렸다. 한치 앞도 예측 못하는 남북관계를 보면 한반도에서 전쟁의 신은 잠도 무자비도 아닌 카오스에 빠진 것 같다. 우리가 기댈 곳은 당연히 서구의 낡은 신화가 아니라 여기 현실 정치인데 정치가 답을 내놓지 못하니 어째야할까.

강수미 미술평론가ㆍ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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