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칼라이 내글은 최근 딸을 출산하면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출산 예정일 몇 달 전부터 보험사, 아기용품 업체, 제대혈 은행, 분유업체 등에서 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쇄도했던 것이다. 몇몇 업체는 내글이 가족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때부터 마케팅 공세를 했다. 내글은 "그들이 나의 임신 사실과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는 온라인에서 개인 신상 정보를 수집, 소비자 정보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파는 '데이터 브로커' 업체들이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 "미국 내 개인 정보 수집·거래 시장이 수십억달러 규모로 커졌지만 관련 규제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 정보기관의 개인 정보 수집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민간 부문에서 공공연히 일어나는 프라이버시 침해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이터 브로커 업체들은 온라인 상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구매 내역, 공공 기록 등 정보를 뒤져 개인의 프로필을 구성한 뒤 판매한다. 하지만 온라인의 정보가 많아지고 업체 경쟁이 과열되면서 정보 가격은 보잘것없이 낮아졌다. FT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나이와 성별, 주소 같은 기본 정보는 1인당 고작 0.0005달러(약 0.57원), 1,000명을 묶어 0.5달러(약 566.5원)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영향력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의 정보는 0.00075달러(약 0.85원), 소득·소비 내역이 포함되면 0.001달러(약 1.13원) 수준이다. 그래 봐야 대부분의 개인 정보는 1인당 총 1달러(약 1,130원) 이하에 팔린다.
약혼했거나 출산을 앞두고 있거나 이사를 가고 자동차를 사는 등 향후 소비 패턴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정보 가격은 조금 높다. 이들을 타깃으로 마케팅하려는 기업의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출산 예정 부모나 새 집을 마련한 사람의 정보는 1인당 0.085달러(약 96.31원), 자동차 구매 의사가 있는 소비자 정보는 0.0021달러(약 2.38원)다. 데이터 브로커 업체 리즈플리즈는 암 등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이름과 메일 주소를 1인당 0.26달러(약 294.58원)로 책정했다. 또 다른 데이터 브로커 업체 ALC데이터는 신용도가 높은 환자의 목록만 팔고 있다.
2011년 세계 경제 포럼 보고서는 "소비자 정보가 사회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자산 즉 '새로운 석유'로 부상할 것"이라면서 개인 정보 시장의 확장을 예견했다. 이 시장은 개인 정보를 모아주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소비 행동을 예측하고 마케팅 전략을 제시하는 분석 자료 거래로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다.
이들 산업의 규모가 커지자 미 의회와 정부 규제 당국, 프라이버시 보호론자들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자신의 개인 정보가 대규모로 거래되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디지털 민주주의를 위한 센터' 대표인 제프 체스터는 "개인의 건강·재정 상태, 성적 지향 등 민감한 정보가 공개됐을 때 그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는 '디지털 주홍글씨'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연방무역위원회(FTC)와 의회 위원회는 데이터 브로커 업체들을 대상으로 수집 정보와 활용 내역을 조사하고 있지만 미국 내 사생활정보 보호 관련 법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FT는 지적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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