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때문에 심신이 스마트하지 못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 든 세대일수록 그 ‘복잡한’ 기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신제품이라도 스마트폰은 그냥 전화기일 뿐이다. 똑똑한 기능이 참 많은데도 모르거나 이용방법을 알려 하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으면 비싼 돈 들여 스마트폰을 살 게 아니라 좋은 무전기나 하나 장만할 걸.
스마트폰이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 중에는 ‘좋은 글’ 공해도 있다. 전과자 교화하듯, 불량 청소년 선도하듯, 말썽꾸러기 길들이듯 삶의 지혜가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을 시도 때도 없이 보내주시는 착한 분들 때문에 성가시다. 나도 ‘차카게 살자’ 식의 그런 글을 수없이 받는다. 어떤 날은 다섯 건이 들어온 적도 있다. 스마트폰이 늘어나면서 이메일보다 스마트폰으로 들어오는 게 더 많아졌다.
최근에 받은 것 하나를 소개해 볼까. 특이한 건축물 50가지를 소개하면서 좋은 말 하나씩 붙인 것이다. “행운은 마음의 준비가 있는 사람에게만 미소를 짓는다.”-파스퇴르, “위대함에는 신비성이 필요하다. 너무 알면 사람들은 존경하지 않는다.”-드골, “중용도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된다.”-아서 캐슬러... 읽으면서 ‘그래서 어쩌라구?’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앞의 말을 부정하는 내용의 금언 격언도 있었다. 다만 건축물 사진은 볼만했다.
좋은 말만 보내오는 것도 아니다. 유명 프로골퍼의 누드사진(가짜로 밝혀진 거지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인턴이라는 여성의 사진, 원주 성접대 별장 사진을 보낸 사람도 있다.
또 이승만 대통령이 밥솥을 장만하고...전두환이 밥 다 먹어버리고 어쩌구 하는 ‘대통령과 밥솥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보낸 사람도 있다. 그거 나온 게 언젠데 뒤늦게 이제사 보내는 걸까? 오늘 아침에는 "콜라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슈? 알고나 마셔." 이런 내용의 카톡이 들어왔다.
어떤 여성은 남을 가르치려 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끌어와 보내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겸손해라, 사랑해라, 욕심 부리지 마라, 등등 온갖 훈계조의 글을 자기보다 15년이나 어린 여성이 보내니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성경 문구나 기독교에 관한 내용을 민폐인 줄도 모르고 자주 보낼 땐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되지도 않은 글이 많아 읽기도 싫지만 답장을 안 해 주면 씹었다고 할까봐 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울며 겨자 먹기로 답을 해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런 글을 왜 보낼까? 1)스마트폰이 손에 있으니까 2)좋은 말을 혼자 알기 아까워서 3)시간이 남아돌아서 4)이놈은 꼭 좋은 말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서 5)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그냥 6)문명의 이기를 이렇게 잘 활용한다고 자랑하려고 7)신속한 정보력과 소통능력을 과시하려고 8)받는 사람들 반응이 좋은 거 같아서 9)앞에서 이야기한 8가지 이유가 다 맞아서 10)내 마음 나도 몰라.
그런데 그런 글은 누가 다 만들어 내는 걸까? 서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같은 내용의 글을 받을 때 자연히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런 좋은 말 전송자 두 명에게 누구 걸 베껴 먹은 거냐고 추궁했더니 둘 다 자기가 생산자라고 주장해 결론을 내지 못한 일도 있다. 아무래도 삼자대면을 해야 할 것 같다.
이쯤에서 베토벤의 조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처자가 없던 베토벤은 조카를 친아들처럼 사랑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 ‘가엾은 영혼’(‘베토벤의 생애’의 저자 로맹 롤랑의 표현)은 삼촌의 지극한 사랑에 부응하기는커녕 자살 기도를 해 병원에 실려 가고 망나니처럼 세상을 살았다.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에는 조카에 대한 절절한 실망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 조카가 나중에 기껏 한 말은 “삼촌이 나에게 착하게 살아라, 착하게 살아라 해서 나는 결국 나빠졌다.”는 것이었다. 이런 무서운 말이 어디 있나?
그러니 나에게 좋은 글, 착한 글 좀 그만 보내라. 그런 글을 자꾸 읽다 보면 나도 베토벤의 조카처럼 나빠질 수 있다. 아니, 참다 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나빠지고 말 테다. 좋은 말 착한 말 말고 웃기는 이야기나 재미있는 동영상은 환영한다. 특히 이런 ‘즐거운 세상’ 칼럼에 써먹을 수 있는 거라면 대환영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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