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남북 회담 경험을 갖고 있는 전 통일부 장ㆍ차관들은 수석대표의 격(格) 문제로 남북 당국 회담이 무산된 데 대해 남북이 지나치게 형식적인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남북의 국가조직 체계가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수석 대표의 직급과 위상을 단순 비교하기 어려워 형식적인 격(格) 문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게 나왔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1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정부 체계가 우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어느 직책이 어디에 맞는지 해석하기가 까다롭다"며 "남북회담의 특성상 어차피 수석대표는 국가최고책임자의 위임을 받는 만큼 어느 직급인지가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지난 21번의 장관급 회담의 격이 맞지 않아 잘못됐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거 정부의 업적을 폄하해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는 자세로 가야 회담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우리 측이 수석 대표로 요구한 북한의 김양건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우리 내각의 장관에 대응하는 직위가 아니다"며 "남북의 국가 조직 원리가 다른데다 정세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회담 대표의 직급을 중시하게 하면 향후 선택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책임 있는 인물간의 회담을 요구한 데 대해서도 정 전 장관은 "북한은 어차피 1인 체제이기 때문에 '넘버2'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1인자한테 물어봐야 한다"며 "김양건 부장이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남북 회담 대표가 국가 최고책임자의 메시지를 갖고 나오고 회담 내용에 대한 재가도 받아야 하는 만큼 단순 직급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은 어떤 형태로든 남북 회담을 진행하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 같고, 우리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대화해야 한다는 점을 너무 전면에 내세운 게 회담 무산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전 차관은 그러면서 "남북간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다드를 적용해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다"며 "회담의 성과가 중요한데 우리가 형식과 원칙에 너무 치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형식을 가지고 내용 자체에 접근조차 못하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하책"이라며 "작은데 연연하다가 큰 판을 깨는 우를 범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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