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 대북심리활동 지시가 초래한 사태인가, 명백한 선거 개입 행위인가.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기로 하면서, 법원이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적용에 대해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원 전 원장의 행위가 이뤄진 시기, 방법, 정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할 때 무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이 많다.
검찰이 원 전 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두 가지다. 국정원의 정치 관여를 금지한 국정원법 제9조를 위반한 혐의와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85조 1항을 위반한 혐의. 앞서 원 전 원장이 4대강 사업 등 이명박정부의 국책사업 홍보를 지시하고 이 지시가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게재로 이어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 내에서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의견은 거의 없었다. 반면 검찰은 원 전 원장이 특정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활동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이 대선을 앞두고 "종북좌파 정치인들이 제도권에 진입해선 안 된다", "적극 대응하라"는 등의 발언을 해 국정원 조직이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활동을 하는데 동원된 만큼 이를 선거개입으로 봐야 한다는 게 수사팀의 결론이다.
원 전 원장 측은 재판과정에서 이 같은 지시가 추상적이며 선거운동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원 전 원장 측에서는 애초 선거에 개입할 의도가 없었으며 '종북좌파'라는 표현 역시 대북심리활동을 지시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일반적 표현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고의성 여부가 공판에서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공개된 내부문건과 증언을 종합하면, 원 전 원장과 국정원 직원들은 '종북좌파'를 야당 인사들을 포함한 넓은 의미로 전제하고 있다"며 "대선 직전 이들에 대한 견제지시가 있었고, 실제 야당 후보 비판 댓글이 게시된 만큼 선거개입은 상당 부분 인정된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발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행동했느냐도 중요하다"며 "평소 내부적으로 야당후보를 '종북좌파'로 지칭하거나 받아들였다는 증거나 증언만 있어도 간단히 유죄가 입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종문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은 "원 전 원장 발언만 떼 놓고 본다면 '정상적 업무 지시'주장이 가능할지 몰라도, 이 지시로 대선국면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특정 정당에 불리한 행동을 반복한 만큼 이는 엄연한 선거개입"이라며 "최근 법원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선거법 위반 사범에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기소 뒤 6개월 이내 1심을 선고한다는 원칙에 따라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고는 올 연말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혐의가 인정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 선고된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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