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문화가 논란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형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법 분야에서도 갑을문화가 심하다. 미국변호사협회의 명칭에 잘 나타나 있다. 미국변호사협회의 공식명칭은 '아메리칸 바 어소시에이션'(American Bar Association)이다. 처음 듣는 사람은 술집바텐더협회라고 착각을 하기도 한다. 이는 '바 앤 벤치'(Bar & Bench)에서 유래되었다. 판사는 벤치에 앉고, 변호사는 바(기다란 의자)에 앉아 법정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역사적 판사는 높은 직위의 귀족이나 왕이 수행하였다. 지방의 경우 중앙에서 판사가 말을 타고 순회하여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그 지방의 인사들로 하여금 관습 등을 청취한 것이 배심원제도의 유래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연방판사는 종신제이다, 즉 한번 임명되면 영원한 판사가 되는 것이다. 나이에 의한 차별은 위헌이라는 헌법정신에 기초한 논리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사법영역에서 민주적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민사분쟁에서의 주된 선수는 양당사자이고, 이의 대리인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판사는 단지 감독자, 최종 판단자이다. 따라서 법정운영방식이 좀더 당사자들의 시각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현행 구술주의는 찬성을 하나, 다만 집중심리가 되지 아니한다면 공허할 수 밖에 없다. 3, 4주 단위로 반복되는 변론과정에서 구술로 주장한 것은 더 이상 기억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간에 인사이동으로 판사가 바뀌는 경우는 좀더 심각하다. 미국처럼 구술주의에 충실한다면 변론이 집중되어 기억에서 벗어나기 전에 일주일이고 계속하여 심리가 지속되어야 한다.
법정에 대한 재인식도 필요하다. 법정은 사법소비자의 신성한 무대이다. 전보다는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순서에 따라 재판을 기다리다가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오래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가 되는 부분도 많지만, 사법소비자의 관점에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재판부당 일주일에 한번 정도 재판일정을 잡는 것을 좀더 많이 잡는 경우에 개별사건당 정확한 시간에 시작하고 좀더 집중적인 심리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판사를 더 충원하여야 할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어 많은 변호사가 양산되고 있는 데에 반하여 판사수의 부족으로 인한 사법소비자의 불편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심각한 것은 대법원의 사건집중이다. 현재 대법원판사 1인당 사건건수는 이론적으로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모두 일한다는 전제로 매일 6~8건 정도이다. 대법원 판사 수를 늘리거나, 아니면 다른 제도개혁을 도모하여야 한다. 가능하면 야간 법정이나 온라인 법정도 디지털시대에 맞추어 과감하게 이를 도입하여야 한다.
형사재판절차 역시 좀더 변화가 필요하다. 검사는 대중의 대리인이라는 시각이 정립되어야 한다. 무죄추정의 법리에 의하여 피고인에 대한 예우도 중요한 부분이다. 심각한 문제는 전관예우의 폐해이다. 전관이라는 용어는 판사직위가 마치 변호사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개념과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이 재직할 때 배석판사가 재판장을 맡은 사건에 변호사로서 참여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런 사건은 원칙적으로 수임하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영국에서는 전직 판사의 경우는 소송사건을 가급적 회피한다. 판결문의 공개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보공개를 통하여 건전한 비판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황당한 판결이 내려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여진다.
사법절차에서 법원은 사법서비스의 제공자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현행 사법활동의 문제점이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실질적인 사법민주화가 이루어진다면 모든 사법소비자가 자신의 권리를 영위하는 새로운 사법문화 역시 정착될 것이다.
김승열 변호사·KAIST 겸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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