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억지를 부리면서 남북회담을 무산시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생트집을 잡고 제멋대로 등을 돌리며 우리 정부에 굴복을 강요하곤 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2011년 2월 고위급 군사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을 들 수 있다. 당시 북한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먼저 제안하며 이와 함께 예비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이틀간 진행된 협상에서 우리 측은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첫 당국대화인 만큼 북한의 사과와 책임있는 조치를 본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북측 대표단은 예비회담 첫날 별다른 비난 없이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했다. 둘째 날에도 오전회의에 앞서 "오늘은 밤을 새더라도 반드시 결론을 내리자"며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하지만 오후 들어 태도가 돌변했다. 북측은 서류파일을 회담 테이블에 내던지며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은 남한의 책임"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더니 회담장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뒤로 이번에 무산된 남북당국회담까지 2년 4개월간 남북의 당국자들은 얼굴을 맞대지 못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북한은 2001년 3월 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지만 회담 당일 아무런 이유 없이 불참을 통보했다. 당시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북한이 힘겨워하던 시점이었다. 같은 해 4월에는 적십자회담을 열기로 했지만 북측이 회담 장소나 시간에 대해 통보를 하지 않아 무기한 연기됐다.
이듬해 5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경협추진위원회 2차 회의도 예정일 하루 직전 북한의 갑작스런 불참 통보로 무산됐다. 북한은 회의에 앞서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공책이 먹혀들고 있다"는 발언을 문제 삼았다.
2001년 2월 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경우 개최를 나흘 앞둔 시점에서 취소됐다. 북한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우리 정부의 비상경계 강화 조치를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행사 취소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1년 2개월이 지나서야 재개됐다.
앞서 1991년 8월에는 평양에서 열기로 했던 4차 고위급회담이 남한에서 발생한 콜레라를 이유로 북측이 회담 장소 변경을 요청해 두 달 후에 열리기도 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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