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남북 당국간 회담을 재가동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남북은 당국회담 전날인 11일 대표단 구성을 놓고 팽팽한 샅바싸움을 벌이다 끝내 합의를 보지 못하고 회담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날 낮 양측이 상대방의 예봉을 확실히 꺾어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한치의 양보 없이 줄다리기를 계속할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통일부 주변에서 당국회담을 하루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단 명단을 확정짓지 못하자 회담 무산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내일 회담이라 오래 논의할 문제는 아니다"면서 회담은 계속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양측은 이날 오후 1시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 연락관 접촉을 통해 대표단 명단을 주고 받았다. 10일 새벽 실무접촉이 끝난 이후 21시간 만이다. 이 자리에서 각 5명씩으로 구성된 대표단 명단을 서면으로 주고 받았다. 당초 우리 정부가 명단 교환의 마지노선으로 염두에 둔 이날 오전보다 늦은 시점이었다.
우리측은 북측이 9, 10일 실무접촉에서 주장한 상급 당국자가 대표단장에 포함된 것에 대해 일단 수용한다는 의사를 전했다. 당초 장관급 회담을 추진했던 우리 정부는 북한에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올 경우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내세울 계획이었지만 북측이 김양건 카드를 접으면서 전략을 수정했다. 따라서 우리측은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대표로 내세웠다.
북측 역시 통일전선부장 급과는 거리가 먼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대표로 내세웠지만 우리 측 역시 차관을 대표로 지명했다는 점에서 신속한 타결을 시도했다. 이를 두고 통일부 주변에서 남북당국회담이 당초 '장관급'에서 '차관급' 대화 수준으로 격이 낮아졌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회담 명칭보다는 협의에 책임 있게 나설 수 있는 인사를 내보내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병은 북측이었다. 한 소식통은 "우리 측은 북측의 대표에 대해 수용의사를 밝혔음에도 북측이 돌연 우리 측에서 통일부 장관이 나와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들고 나왔다"고 전했다. 우리 측은 "당국회담에서 남북문제를 실질적으로 협의ㆍ해결할 수 있는 인사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북측은 요지부동으로 특유의 버티기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오후 내내 줄다리기가 벌어진 끝에 저녁 7시5분 북측은 전화를 통해 "남측이 수석대표를 차관급으로 교체한 것은 남북당국회담에 대한 우롱이고 실무접촉에 대한 왜곡으로서 엄중한 도발로 간주하고 북측 대표단 파견을 보류한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그러면서 "무산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당국에 있다"고 부연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측은 북한측의 급을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는 북한 대표단 구성에 대해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 측은 "당국회담에서 남북문제를 실질적으로 협의ㆍ해결할 수 있는 인사를 보냈다"고 설명했지만 북측은 요지부동이었고 끝내 회담은 무산됐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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