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내정치 개입 의혹 사건 처리 방향을 두고 촉발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수사 개입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펼쳐 온 검찰 수사팀과 황 장관이 우여곡절 끝에 절충안에 합의했지만, 안팎에서 '앞으로도 황 장관이 유사한 방식으로 사사건건 수사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등 갈등의 불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형국이다.
갈등은 공소시효 만료를 불과 보름 앞둔 상황에서 불거졌다. 당초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부장검사)은 지난달 27일쯤 수사결과를 종합해 원 전 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적용,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결론은 대검찰청을 통해 법무부에 보고됐으나, 황 장관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 쪽으로 법리검토를 다시 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수사팀의 강한 반발을 샀고 채동욱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도 재차 구속영장 청구에 동의 의사를 밝혔지만 황 장관이 결정을 연일 미뤄온 것으로 전해졌다. 법리검토가 길어지면서 '청와대 압력'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법무부와 검찰은 "통상적으로 검찰이 법무부에 보고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으며 원활하게 상호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수사팀 내 반발 기류는 여전했다.
그 사이 황 장관과 수사팀이 어떤 합의점도 찾지 못한 채 통상적 구속수사 기간(10일) 자체가 보장이 되지 않는 시점에 이르렀고 결국 수사팀이 영장 청구 방침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될 경우 보완수사 해 재청구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게 됐다. 결국 원 전 원장에 대한 '불구속' 결론은 치열한 법리검토의 산물이 아니라 사실상 황 장관의 '버티기'로 구속수사의 실익이 사라진 상태에서 정해진 셈이어서 이번 사태를 둘러싼 앙금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 수뇌부까지 동의한 결론에 대해 장관이 개입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중립적 수사를 다짐했던 검찰 조직 전체가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치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묵살하고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에 대해서도 사실상 재검토를 주문했다"며 "황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 제출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날을 세우는 분위기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불구속 결정이 검찰의 독자적 판단이 아닌 사실상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따른 타협의 결과라면, 검찰의 앞날이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은 "결정이 늦어진 이유는 선거법 위반 혐의 성립 여부에 대한 증거판단 및 법리검토 작업이 까다로워 보강 조사 등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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