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여개국에서 열리는 '글로벌 셰어링 데이' 성황작년 '빅런치' 행사 땐 영국 인구 14% 850만 동참이탈리아 빈민촌 '마테라' 강제 철거 위기 극복하고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돼 지역 공동체 보존에 활기
영국 런던 남쪽 해안도시 브라이튼의 주택가 찻길에 2일 자동차 대신 식탁과 의자가 늘어섰다. 한쪽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다른 쪽 바비큐 그릴에서는 소시지와 채소 꼬치 굽는 냄새가 풍겨 나왔다. 주민들은 음식 냄비를 든 채 모여들었다. 남자들은 삼삼오오 맥주를 마셨고 낯선 이들끼리는 통성명을 했으며 아이들은 길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다. 쓰지 않는 물건을 바꿔가는 '공유 탁자'도 마련됐다. 주민 저스틴 프랫은 "이 동네에 9년 살았지만 주민이 한데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함께 식사하며 일요일 오후를 즐겁게 지냈다.
음식 공유, 공동체 문화의 출발점
이날 세계 190여개국에서 동시에 개최된 '제2회 글로벌 쉐어링 데이' 행사의 일부인 길거리 파티 풍경이다. 글로벌쉐어링데이는 다양한 방식의 공유경제를 실천하며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는 날. 영국 공유경제 캠페인 단체인 피플후쉐어가 지난해 11월 시작했다. 올해는 세계 185개 공유경제 단체·기업이 동참했고 약 6,000만명이 함께 했다.
행사의 주제는 음식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브라이튼에서 길거리 파티를 주최한 피플후쉐어 창립자 베니타 마토프스카는 "영국에서는 매년 1,500만톤의 음식이 버려지고 집집마다 참치캔 등이 썩을 때까지 방치되는 반면 4만명은 기본적 식생활조차 못하고 있다"며 "이들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이 음식 공유"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음식 공유가 활성화돼 있고 이는 공동체 문화와 관련된다. 피플후쉐어의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중 약 30%가 음식 공유 경험이 있다. '영국 국민 전체가 1년에 한번은 이웃과 만나 점심을 먹자'는 취지로 2009년부터 매년 6월 진행되는 길거리 파티 '빅 런치'에는 지난해 인구의 약 14%인 850만명이 참여했다. 음식 공유 단체인 페어쉐어는 지난해 버려지는 식재료로 총 1,000만인분의 식사를 만들어 필요한 사람에게 전했다.
버려지는 식재료, 사람을 모으다
런던 브릭스톤 지구에 사는 서비스 디자이너 판 시소코와 카밀라 마샬은 2년 전부터 음식 공유 행사를 열고 있다. 아직 신선한데도 식료품점에서 버려지는 식재료를 수거, 공공장소에서 주민과 함께 요리해 먹는 행사다. 한 달에 한 번 열다가 4월 자전거를 개조해 간이 조리대 '모바일 키친'을 만든 뒤에는 매주 개최하고 있다. 매번 대여섯 곳의 식료품점에서 적게는 20~40㎏, 많게는 160~200㎏의 식재료를 수거해 샐러드와 라자냐 등을 만드는 데 지난달 공원에서 큰 규모로 열었을 때는 약 100명이 참가했다. 이 자리는 어린이를 위한 환경 교육과 주민 커뮤니티의 장이기도 하다.
시소코는 대학에서 환경 디자인을 전공할 때 음식 쓰레기 문제에 눈을 떠 이 일을 시작했다. 그는 "식재료가 버려지는 것을 볼 때마다 절대로 식재료를 낭비하는 법이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웠다"고 말했다. 3년 전 고향 프랑스를 떠나 런던에 온 후 하루 종일 컴퓨터를 들여다 보는 삭막한 영국 직장 문화에 지쳐 동네 문화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한 것도 동기가 됐다. 그가 사는 브릭스톤은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문화 지역이다. 시소코는 "이 일을 사업화해 지역 일자리 창출까지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공유경제
공유경제의 작동 기저에는 사회적 관계 회복에 대한 욕구가 있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미국인 18세 이상 성인 2,1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유경제 참여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동기가 '타인을 돕기 위해'라고 밝힌 비율은 37%, '사람들을 만나는 등 사회적 보상을 얻기 위해'라고 밝힌 비율은 25%였다. 미국 뉴욕에서 공유경제 기업·단체의 네트워크 행사를 주최하는 플랫폼 렛츠콜라보레이티브 창립자 멜리사 오영은 "공유경제 기업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것도 공동체"라며 "신뢰를 바탕으로 삶을 공유할 의지가 있는 개인들이 공유경제의 인프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유경제와 공동체가 만나는 지점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 바실리타카주 마테라에 위치한 공유사무실 카사 네투럴은 쇠락한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고민하는 공간이다. '주민들과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그들이 여기에 머물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이탈리아 각지에서 온 25~45세 창업자와 프리랜서, 예술가들은 카사 네투럴에서 사무실만 나눠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지역과 공유하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주민을 대상으로 가구·가전 제품을 수리하는 재활용 워크숍을 열고, 주변 여행 가이드 프로그램을 짜고, 지?농부들과 함께 바실리타카주의 일상 소리를 녹음하는 일을 진행한다.
카사 네투럴의 창립자인 건축가 안드레아 파올레티가 자신의 활동 기반인 이탈리아 북부를 떠나 마테라에 온 것은 "유서 깊고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는 이곳을 존속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테라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절벽 위 동굴 주거지 '새시'(Sassi)로 유명한 곳이다. 현대에 들어 빈민촌으로 변한 새시를 이탈리아 정부는 여러 차례 없애려고 했지만 주민 반발로 실패했고 주민들이 지켜낸 이 독특한 풍경은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관광명소가 됐다. 파올레티는 "마테라는 매력적이지만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미래의 번영을 꿈꾸는 활기를 찾아볼 수 없다"며 "여기에 혁신적 생각을 하는 젊은이들이 모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로존 위기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지역 사회와 공동체 문화를 되살리는 공유경제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런던·브라이튼=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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