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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파묻혀 살았던 남편 그 책 통해 상실감 치유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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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파묻혀 살았던 남편 그 책 통해 상실감 치유받았죠"

입력
2013.06.1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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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뇌종양으로 타계한 출판평론가 최성일씨는 책쟁이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애서가였다. 책을 만지기 전에 손을 씻고, 필요한 부분엔 자를 대고 밑줄을 그을 정도로 유별났다. 그런 그가 아내 신순옥(43)씨와 열네 살, 열 살 두 아이에게 남긴 것은 2만권의 책. 서른 평 아파트의 벽이란 벽은 모두 책장을 짜 채워 넣었고 네 식구는 책이 없는 유일한 공간인 안방에 모여 자야 했지만 남편은 끝내 책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골칫덩이던 책들은 남편이 떠난 후 신씨에게 묘한 위안을 줬다. 남들은 압사할 것 같다고 뜨악했지만 남편의 체취가 남아있는 듯 포근했다. 11일 마포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서른 한편의 독서에세이를 묶은 (북바이북 발행)를 출간한 신씨를 만났다. 최성일씨가 글을 연재하던 출판 전문 잡지 '기획회의'에 신씨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연재한 서평을 묶은 책으로 남편을 떠나 보낸 후 느낀 상실감과 치유 과정, 육아와 생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버무린 에세이 성격이다. "가버린 사람 물건을 정리하라고들 하는데 죄스러운 생각에 버리지 못했어요. 아이들도 책이 곧 아빠라며 만류하고… 결국 남편이 남긴 장서가 밥벌이가 되고 이렇게 책까지 내게 됐네요."

전업 주부로 살던 그가 글을 쓰게 된 건 유고집이 된 에 소박하고 담백한 머리말을 쓴 신씨의 필력을 눈여겨 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듯 한 달에 두 번 정도만 쓰라시더군요. 의미 있는 작업이겠다 생각해서 수락은 했지만, 전업 주부로 살던 제가 글을 쓰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많이 흔들렸을 것 같네요. 책 외에 남편을 대신할 만한 뭐가 있었을까요." 평범한 사람이 저 자신을 위해 쓴 책에 무슨 인터뷰냐며 머뭇머뭇하던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남편은 자신을 노출시켜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말하곤 했죠. 막상 나를 보이려니 덜컥 겁이 났어요. 글이 나오지 않다가 내 남편이 누구다 그거부터 드러내고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쓰다 보니 조금씩 써지더군요."

책은 남편을 보내고 황망한 신씨를 달래 준 베레나 카스트의 에 대한 서평으로 시작해 아이들이 죽음을 왜곡하지 않도록 상실을 상실로 받아들여 치유하는 책들을 소개하며 맺는다. 차마 정리하지 못한 남편의 서가처럼 그리움과 애도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이 사부곡은 세상 모든 이별에 따듯한 위로를 건넨다.

다음달이면 최성일의 2주기다. 지난 주 남편이 묻혀 있는 곳에 책을 들고 가 속으로 머리말을 읽어줬다는 그의 얼굴에서 착잡함이 읽혔다. "아직 다 떠나 보내진 못한 것 같아요. 집에 있는 책도 버리진 않을 거예요. 아이들과 나중에 아빠 이름을 내건 도서관을 만들자고 얘기했어요."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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