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군의 차기 전투기(F-X) 기종 선정이 임박했다. 2007년 7월 소요(所要)가 결정된 지 6년여만이다. 사는 쪽(정부)과 파는 쪽(업체) 사이의 굵직한 협상은 끝났고 서로 가격을 맞추는 절차만 남았다. 워낙 규모(8조3,000억원)가 큰 사업이어서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기술 이전 등으로 돌려주고라도 반드시 따내고 말겠다는 게 입찰 참여 업체들의 생각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10일 "3차 F-X 사업 수주 후보 업체들인 미국 록히드마틴, 보잉,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등 3곳의 절충교역 제안을 방위사업청이 평가한 결과 3개 업체 프로그램의 평가 금액 모두 예상 총사업비의 60% 안팎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절충교역은 해외에서 무기 또는 군용 장비를 구매할 때 계약 상대방에게 관련 기술 이전이나 일감 배분, 국산 무기ㆍ부품 대응 구매 등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교역 형태다. 한국은 참여 업체들을 상대로 '예상 총사업비 대비 50% 이상'의 절충교역 프로그램을 제시할 것을 요구해 왔다. 군 관계자는 "각 업체가 제안한 절충교역 프로그램은 가격 입찰 직후 실시되는 기종 결정 평가 때 점수로 반영된다"고 말했다.
EADS(유로파이터 타이푼)는 항공전자장비 소스 코드(소프트웨어 내용을 프로그래밍 언어로 나타낸 설계도) 등 주요 기술을 넘기고, 국내 업체가 생산한 부품을 수십억유로어치 구매하겠다고 제안했다. 한국이 구매하는 자사 전투기 60대 중 53대를 한국 내에서 최종 조립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보잉(F-15SE)은 국내 항공업체가 생산하는 부품을 수십억달러 규모로 구매하고 우리 공군이 훈련에 활용할 수 있는 '합성전장모의시스템(LVC)'을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꼬리날개 등 주요 부속품의 국내 생산을 제안한 록히드마틴(F-35A)도 보잉과 마찬가지로 LVC 구축을 약속하는 한편 협상 막바지에는 한국군의 독자 통신위성사업 지원을 약속해 가점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전투기 설계 등 핵심 기술 이전은 3개 업체 모두의 제안에 포함됐고, 서로 비슷한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평가됐다"고 말했다.
가격 입찰은 이르면 다음 주초(17일)쯤 시작될 전망이다. 가격 협상은 동체와 엔진, 무장, 레이더 등 전투기 부분별 가격을 흥정하는 단계이고, 가격 입찰은 입찰 참가 업체들이 총사업비 개념으로 전체 가격을 제시하는 단계다.
아직 세 기종의 가격 모두 10조원이 넘지만 2~3주 입찰을 진행하면 사업 타당성 재조사가 필요 없는 총사업비의 120%(9조9,600억원) 이내로 낮출 수 있다고 방사청은 낙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중순쯤이면 정부가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기종을 확정할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근거에서다.
그러나 최종 결정 시기가 몇 달 늦춰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스텔스(레이더망 회피) 기능이 탁월한 데다 한국의 오랜 안보 파트너인 미국 정부가 판매자여서 가장 유력한 후보 기종으로 꼽히는 F-35A 측과 우리 정부 사이의 가격 협상이 순탄치 않아서다. 상업구매 방식인 유로파이터와 F-15SE는 확정가를 제시하지만 F-35A는 정부 간 계약인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이기 때문에 확정가를 제시하지 않는다. F-35A가 차기 전투기로 선정되면 록히드마틴이 미 공군에 공급하는 가격에 맞춰 국내 공급가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향후 가격이 인상될 경우 우리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방사청은 미 정부가 확정가 제시를 거부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미 정부측은 상한가 제시도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