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당국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청와대와 정부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말 이럴 때일수록 냉철할 필요가 있다. 너무 앞서 가지 말고 협조를 부탁 드린다"고 당부했다. 우리 정부의 이 같은 기류는 역으로 박근혜정부 첫 남북회담을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인 동시에 의제 등 회담 전략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남북대화 재개는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본격 가동을 의미하지만 회담 의제와 수석대표급을 둘러싼 이견에서 보듯 막상 대화국면이 전개되면 곳곳에 암초가 불거질 수 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어렵게 시작된 첫 대화에선 이산가족 상봉 등 결론 도출이 상대적으로 쉬운 의제부터 접점을 찾아가면서 남북 간 불신을 줄이는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도 "합의하기 쉽고 의견 절충이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회담에 임할 것"이라며 "당국회담 한 번으로 지금 제기되고 있는 모든 현안이 다 협의ㆍ해결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정부는 이번 회담을 신뢰프로세스의 대전제인 '신뢰 구축'의 시발점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은 신뢰부터 쌓을 수 있는 노력을 서로 해 나가면서 그것이 점점 더 큰 신뢰로 나아가서 더 큰 협력관계를 이뤄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청와대 관계자도 "신뢰프로세스는 말 그대로 인내가 필요한 것이고 그런 인내는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정부는 구체적인 성과물에 집착하기보다는 모처럼 마련된 남북대화의 판이 흔들리지 않게 하고 이를 단막극이 아니라 정례화 등의 연속극 수준으로 이어갈 수 있는 전환점으로 만드는데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담을 통해 남북 간 불신의 장막을 어느 정도 걷어 내는데 성공한다면 앞으로 회담 의제는 비핵화 등의 난제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번 회담에서도 신뢰프로세스의 한 축인 비핵화나 6자회담 복귀 문제가 원론적 수준에서라도 언급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발표문에 '당면하게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에 비핵화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가 당장 비핵화를 압박하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신뢰프로세스가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 등을 아우르는 개념인 만큼 남북 접촉 과정에서 '퍼주기 논란'이 제기될 여지를 차단하는 데도 신경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도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무원칙한 퍼주기를 한다든가 적당히 타협해 그때그때 넘어가 더 큰 위기를 초래하지는 않겠다"고 강조해왔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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