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산천동에서 10년 넘게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A씨는 한숨만 가득하다. 지난 3월 중순 길 건너 맞은편 20m도 안 되는 거리에 편의점 '홈플러스365'가 들어섰기 때문. 홈플러스365점포는 24시간 불을 밝히며 매장 앞 초특가, 1+1 할인상품을 가득 쌓아놓고 영업 중이다. A씨는 "인근 편의점이 있어도 편의점보다는 싸다며 찾아온 고객들도 많았는데 이제는 모두 홈플러스365로 가고 있다"며 "지난 2개월간 매출이 30%이상 줄었다"고 토로했다.
유통법 개정으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영업규제가 강화된 이후, SSM의 상품공급점, 작은 SSM형태의 편의점 등 '변종SSM'들이 속속 오픈하고 있다. 인근 소매점주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꼼수 확장"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고, 유통업체들은 "기업 생존을 위한 불가피하고 합법적인 선택"이라고 맞서고 있다. 골목상권 논란이 2라운드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마트의 SSM인 '에브리데이'의 상품공급점은 지난해 5월말 170개에서 현재 302개로 배 가까이 늘었다. 롯데슈퍼도 지난 2011년 인수한 CS유통의 상품공급점인 '하모니마트'를 184개에서 217개로 늘렸다.
상품공급점은 업주가 월 일정 금액 이상 본사로부터 상품을 구매하면, 대기업 상품공급점 간판을 내걸 수 있다. 본사 직영이 아닌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유통법이나 상생법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 상권에선 "대기업 물류를 이용하고 대기업 간판과 전산시스템을 쓰기 때문에 SSM이 직접 들어온 것과 다르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인천 광주 등 상인단체들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SSM진출이 어려워지자 꼼수로 가맹점 늘리기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를 규제할 법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인천시도매유통연합회 관계자는 "대형마트와 SSM으로 인한 소매업 매출 감소에 이어 이제 중소 도매업자의 매출까지 줄어들고 있다"며 "이마트 에브리데이에 대한 사업조정신청을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현재 편의점 홈플러스365를 34개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만 22개의 매장을 여는 등 편의점 가맹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편의점은 동일 가맹점 간 신규출점 거리제한 규정(1,000개 이상은 제외)을 제외하고는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등에서는 제외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출점이 수월하다.
하지만 홈플러스365는 면적 130㎡내외로 슈퍼마켓보다 작지만 통상적 편의점보다는 월등히 넓다. PB브랜드와 신선식품을 판매하고 있고, 신선식품 비중이 20%까지 되는 곳도 있어 변칙 SSM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한국편의점협회도 상품구성, 영업방식, 점포형태 등을 고려해 홈플러스365를 편의점이 아닌 미니 SSM으로 결론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들 또한 반발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법 규제 때문에 대형마트도 SSM도 더 이상 출점은 불가능하다. 유통업체에게 출점을 하지 말라는 건 더 이상 성장하지 말하는 것과 같은 얘기인데,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업태를 개발하는 건 기업의 당연한 생리"라고 말했다. 다른 유통업체 관계자도 "상품공급점의 경우 본사는 개인점주가 요청하는 상품을 공급해주고 가맹비나 수수료는 받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점주들에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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