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4개월 만에 머리를 맞댄 남북은 치열한 기싸움을 벌인 끝에 남북당국회담을 도출했다. 9일 오전 10시13분에 시작한 남북 실무접촉은 10차례의 전체회의와 수석대표 회의를 거친 끝에 10일 새벽 3시15분에야 끝났다. 하지만 17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에서도 남북 양측은 의제와 수석대표의 급(級)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각자 발표문을 내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했다.
실무접촉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은 10일 브리핑에서 "수석대표로 우리측은 통일장관과 통일전선부장간 대화로 합의를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북측은 6ㆍ15선언과 7ㆍ4남북공동성명의 기념행사 공동개최를 고집하는 바람에 의제에서도 최종합의를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점에서 실무접촉은 미완의 사전협의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구나 남북이 장관급 회담을 합의하지 못하고 12~13일 서울에서 열리는 회담을 격(格)도 불확실한 당국회담으로 타결짓는 바람에 미봉(彌縫)에 그친 실무접촉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천 실장은 "명칭보다는 남북 문제의 실질적인 협의와 해결이 중요하고 새 정부의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이라는 의미를 고려했다"고 설명했지만 장관급 회담이 당국회담으로 격이 떨어졌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남북이 사전협의부터 불협화음을 내면서 당국회담의 전망까지 불투명해졌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남북이 공감대를 형성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외한 개성공단 정상화화 금강산 관광 재개, 각종 행사 공동개최 등 대부분 의제에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번 실무접촉을 통해 남북이 인내를 갖고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여야 정치권도 이날 일제히 환영의 성명을 내고 남북당국회담에서 성과를 내기를 기원했다. 특히 2011년 2월 남북이 고위급군사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에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을 둘러싸고 치고받았던 것과 달리 밤샘 협상을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양측의 대화의지가 재차 확인됐다.
당국회담의 성사로 남북은 또 상생의 기회를 잡게 됐다. 우리 정부는 남북 대화의 모멘텀을 살렸고 박근혜정부는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발전시킬 계기를 마련했다. 북한도 전향적인 대화에 나서면서 경제적 실리를 포함한 나름의 전리품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향후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위한 교두보도 확보했다는 관측이다. 조봉현 IBK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남북이 대화 모멘텀을 제대로 살린다면 한반도 위기관리나 경제지원 등의 일시적 실리 이상을 챙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남북 당국회담은 나아가 한반도 정세의 중대전환점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북한 김정은 체제의 대남정책이 접점을 찾게 된다면 한반도 질서는 보다 안정적 단계로 접어들 전망이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