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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자본주의,공유경제 현장을 가다 (2)생산하는 공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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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자본주의,공유경제 현장을 가다 (2)생산하는 공유경제

입력
2013.06.1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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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케빈 조(47)씨는 지난달 3D 프린터 개발제조업체 초코3D를 설립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다가 2년 전 귀국한 그가 한국에서 새로운 분야의 창업을 하는 데는 창업 컨설팅단체인 타이드인스티튜트가 서울 청계천에서 운영하는 팹랩(Fablab)서울의 도움이 컸다.

디지털 제조 역량을 공유하는 팹랩

팹랩은 제작 실험실(Fabrication Laboratory)의 약자로 3D 프린터, 레이저·비닐 커팅기, CNC조각기 등 디지털 제작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들 장비를 이용하면 개인 컴퓨터로 그린 설계도면을 실물로 생산할 수 있다. 누구나 제조업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팹랩의 취지는 장비를 개인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학생과 예비 창업자, 중소기업가들이 관련 장비를 공동으로 이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소비 자원을 넘어 생산 수단까지 공유하는 공유경제의 한 단면이다.

조씨는 “3D 프린터 사업에 관심이 있었지만 실제로 장비를 다룰 기회가 없었는데 팹랩서울 덕분에 사업을 구체적으로 구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이런 공간이 활성화돼 있고 서로 다른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들끼리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쉽다”고 설명했다.

팹랩은 1998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닐 거센필드 교수가 창안했다. 그는 학생 대상 디지털 제작 장비 사용법 수업을 바탕으로 인도, 가나, 아프가니스탄 등에 팹랩을 설립했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따로 공학 교육을 받지 않은 대중도 지역의 필요에 따라 창의적 발명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프간 팹랩에서는 고감도 와이파이 설비가, 인도 팹랩에서는 저렴한 전화기가 각각 생산됐다. 성과가 알려지면서 세계 팹랩 설립은 더 활발해졌다. 지난해 36개국에서 127곳의 팹랩이 운영됐다.

팹랩은 디지털 제조 시스템 발전과 맞물려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2011년 미국 코넬대에서 발간된 ‘집안의 공장: 개인적 제조 경제의 부상’ 보고서는 “디지털 제조 기술 비용이 낮아져 집에서 칫솔부터 전자기기까지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정부에 “모든 학교에 디지털 제조 랩을 만들 것”을 권고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벤처 창업자들의 시제품 제작소 테크숍, 화이트 해커들의 커뮤니티 공간인 해커스페이스 등도 팹랩과 함께 대표적인 공유경제 생산 공간으로 꼽힌다. 테크숍은 현재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6곳이 운영 중이며 해커스페이스는 지난해 660여 지역에 분포된 것으로 조사됐다.

독립적 노동자들의 공동 일터, 공유사무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6층 건물 베타하우스는 200여명의 일터다. 하지만 회사는 아니다. 출퇴근 시간도, 규율도 없다. 개인 사업자, 프리랜서, 예술가 등 정해진 일터가 없는 사람들이 회비를 내고 이곳의 사무실과 회의실, 공방과 실험실을 자유롭게 나누어 쓴다. 이들은 각자 일을 하지만 기꺼이 동료를 도울 준비가 돼 있다.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게시판에는 자신의 작업을 도와줄 지식이나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찾는 구인 메모가 빼곡히 붙어 있고 다인용 탁자에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는 풍경도 눈에 띈다.

이 같은 형태의 공유사무실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베타하우스를 운영하는 공유사무실 중개 사이트 데스크원티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공유사무실은 전년에 비해 89% 늘었으며 2010년에 비해서는 3배 이상 증가해 80여개국 2,498곳으로 집계됐다. 미국 781곳, 독일 230곳, 영국 154곳 등 서구에 몰려 있지만 최근에는 남미와 아프리카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스페인(199곳), 이탈리아(91곳) 등에서 성장세가 빠르다. 아시아에서 공유사무실이 가장 많은 국가는 일본(129곳)이다.

베타하우스와 데스크원티드를 창업한 카스텐 푀르츠는 “경제 위기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노동 조건이 악화하자 자영업을 택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등 독립적으로 일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세계 노동인구 중 약 37%인 10억 명이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로 추산된다.

이들이 공유사무실을 찾는 것이 사무실 임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데스크원티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공유사무실에서 사회적 관계(94%)와 사업 네트워크(88%)를 넓힐 수 있었다고 답변했다. 개인사업자의 92%는 “공유사무실을 이용한 후 자신감이 높아졌고 고립감이 줄어들었다”고 답변했다.

서울 북창동에 있는 공유사무실 스페이스노아는 한국형 공유사무실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곳은 지난해 12월 문을 연 후 6개월 만에 회원이 약 40명으로 늘었다. 스페이스노아의 특징은 매주 한 차례 열리는 네트워킹 파티. 회원들이 자신의 일을 설명하고 협력할 동료를 찾는 자리다. 디자이너 석지원(45)씨도 이 파티를 통해 만난 일러스트 작가 지형섭(28)씨와 함께 지난달 에코백(천으로 만든 친환경 가방)을 제작했다. 석씨는 “회사를 그만둔 후 서너 달 동안 집에서 혼자 일하다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얻기 위해 2월부터 공유사무실을 이용했다”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긴다”고 말했다.

서울에는 이런 공유사무실이 5곳 운영되고 있다. 역삼동 디캠프와 논현동 서울스페이스에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삼성동 허브서울은 세계 사회적 기업 공유 사무실 프랜차이즈인 더허브의 서울 지사다. 성북동 이스트포는 건축가, 디자이너들을 위한 공간으로 특성화돼 있다.

베를린=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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