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주요부품의 시험성적표가 위조된 것이 드러나면서 핵발전소가 추가로 가동 중단되었다. 이후 연일 전력수급경보가 발령되고 전력부족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덕분에 국민은 '전력애국심'이라도 발휘해야 할 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원전 마피아'의 실체가 드러나고 부패사슬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기를 속는 셈 치고 또 한 번 기대해본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런 소동은 핵발전 확대논리를 더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핵발전소가 예상치 않게 멈추는 것과 동시에 전력부족 사태, 어쩌면 블랙아웃까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그 결과 핵발전소 추가건설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핵발전소가 부족해서 전력부족 사태가 일어나는 것인가? 128호에 전순옥 국회의원 비서관 박성환이 쓴 '전력부족, 진실과 거짓'이라는 글을 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이 글에 따르면 핵발전소가 부족해서 전력부족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핵발전소를 비롯한 현재의 전력산업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력부족 사태가 '필요'하다.
우선 전력부족은 전력사용확대 정책에 의해 유도된 측면이 크다. 핵발전소 건설로 인해 전력과잉공급이 이루어지자 정부는 낮은 전기요금체계, 심야전기사용 촉진 등 적극적인 전력사용확대 정책을 펼쳤다. 이때부터 우리 생활에 전력낭비의 대표 격인 전열기구가 자리잡았고, 석유나 가스 난방기구가 점차 사라지고 대신 시스템 냉난방기가 설치되었다. 정부는 전력부족을 외치면서도 2008년부터 4년 동안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시스템 에어컨설치를 장려했다. 그 결과 지속적인 전력부족현상이 벌어졌고, 이는 다시 핵발전소건설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또한 한국전력은 매년 수천억원의 흑자를 내던 시절 전력산업을 민영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전기생산 원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석유가격이 오르면서 전력시장 민영화에 실패한다. 그러나 이미 전력시장에 발을 담근 대기업 발전사의 적정이윤을 보장해줘야 이들이 계속 전기를 생산할 것이라는 이유로 '계통한계가격'이라는 기막힌 가격결정방식을 도입했다. 이것은 전력거래소가 각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사들일 때 구매한 전력 중 가장 비싼 가격을 나머지에도 일괄 적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전력부족상황이 벌어지면서 가장 비싼 전력도 없어서 못 사는 형국이 되었고, 그로 인해 민자발전소에 막대한 이익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전의 천문학적인 적자규모와 대비되며, 대기업이 진출한 민자발전소의 수익을 정부가 보장해주는 구조이다. 그런데도 '제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18기의 발전소를 건설하고 이 중 12기를 SK건설, 삼성물산 등 대기업이 참여하는 민자발전소로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결국 전력부족 현상은 이들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
이밖에도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지나치게 싸서 등유가격의 절반수준이고, 생산원가의 90%에도 미치지 않아 이로 인해 기업들이 챙기는 간접이익도 엄청나다. 또한 전기요금의 2-3%를 적립해서 조성된 기금으로 전력소비량이 급증하는 기간에 기업이 절전을 하면 마치 상금처럼 거기 해당하는 금액을 보상을 해주는데 그 돈이 작년 한해만 3,646억원이었다고 한다. 결국 산업용 전기요금 정책이란 기업에게 석유보다 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해주기 위해 핵발전 확대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력부족 상황'은 현재의 전력산업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력위기가 있어야 대기업건설사, 핵발전업계, 한전, 민간발전사 등 전력산업 이해관계자들이 계속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합리적인 전기요금설계와 에너지 간 형평성조정만으로도 지금의 전력수급 위기는 단기간 내에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전력수급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핵발전소건설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력산업계의 기득권구조를 끊어야 한다.
박경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