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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이야기/6월 11일] 복기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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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이야기/6월 11일] 복기하는 시간

입력
2013.06.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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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이던 문서 몇 개가 난데없이 사라졌다. 뭐가 문제지? 종일 폴더들을 뒤지고 지식인에 올라온 해법을 동원하고 복구프로그램을 돌려봐도 소용이 없었다. 머리가 뜨거웠다. 실은 일 년에 두어 번은 꼭 일어나는 일이니 불찰이랄 수밖에 없다. 사고가 터진 직후 며칠간은 꼬박꼬박 백업파일을 만들다가 얼마 못 가 마음이 느슨해진다. 설마 무슨 일 있겠어? 무슨 일이 없으리라 지레 믿는 그 순간, 꼭 무슨 일이 생기고 만다.

결국 문서를 그대로 되살리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기억에 의지하기로 했다. 일단 당장 보내야 할 원고를 다시 쓰고, 잃어버린 파일들을 떠오르는 대로 복기했다. 한숨이 나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생각의 흐름이 안타까웠다. 막힌 그 자리에서 샛길을 트는 새로운 문장은, 조금 기특했다고 해두자. 어쩌면 나는 새로 난 샛길 덕에 애초 쓰려던 것과는 한참 다른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당분간은 또 애쓴 원고들을 통째로 날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것 같다. 백업파일도 열심히 만들고 웹하드에도 신중히 올려둘 것이다. 편리한 디지털 파일이지만, 삭제되면 흔적도 없고 퍼지기 시작하면 손쓸 도리가 없으니 이래저래 불안하다. 그러다가 무더위가 끝날 즈음엔 방심이 찾아올 테고, 방심의 틈을 타 어느 날 다시 불상사가 닥치겠지. 망연자실의 끝에서 잃어버린 문장들을 더듬다가 뜻밖의 샛길로 접어들면, 거긴 어디쯤일까. 때 이른 근심 사이로 슬며시 설렘이 밀려온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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