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기가 막힌 일을 당하면 어이가 없다거나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한다. 어이와 어처구니는 같은 말이라고 한다. 어처구니에는 1)상식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 2)맷돌을 손으로 돌릴 때 흔히 쓰는 나무 손잡이, 이런 두 가지 뜻이 있다. 그러니 상식을 깨는 사람이나 물건을 보게 되거나 꼭 필요한 물건이 없으면 어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어이에는 어머니라는 뜻도 있나 보다. 속담에 나오는 어이딸은 어머니와 딸, 어이아들은 어머니와 아들을 아우르는 말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을 아우르는 말은 없는지 궁금하지만(아이아들, 아이딸 이러면 안 될까?), 어이딸이나 어이아들은 오늘날에도 되살려 쓰면 좋은 말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자주 틀리는 맞춤법 best 10’이라는 자료를 보니 가장 자주 틀리는 말이 바로 어이없다를 잘못 알고 쓰는 ‘어의없다’였다. 이 자료가 처음 뜬 건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이라는데 출전이 불명확하고, 누가(10대?) 잘 틀린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잘 틀리는 걸 best 10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스웠다. 베끼고 또 베끼고 퍼 나르고 또 퍼 날라서 인터넷에는 똑같은 자료만 둥둥 떠다니고 있다.
‘어의없다’ 다음에 자주 틀리는 순서로 나머지 아홉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괄호 안이 바른말). 병이 낳았다(나았다), 않하고(안 하고), 문안하다(무난하다), 오랫만에(오랜만에), 예기(얘기)를 하다 보니, 금새(금세) 바뀌었다, 왠일인지(웬일인지), 몇일(며칠), 들어나다(드러나다), 이런 순이다. 문안하다와 무난하다는 다른 말인데도 별로 어려움이 없다는 무난(無難)과 안부를 묻는 문안(問安)을 헷갈리는 게 문제다.
어이없다를 어의없다로 쓰는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겠다. 뭔지 모르지만 ‘어’라면 語(말씀 어)가 들어 있는 거 같은데 그 다음 ‘이’는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한자로 意(뜻 의)일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쓰나 보다. 즉 ‘어의없다’는 상대방이 하는 말에 ‘말의 의미, 뜻, 내용이 없다’는 뜻인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보니 뭐라고 대꾸할 생각(기분)이 나지 않는다, 나 말 안 해, 이런 뜻으로. 그래서 어의(語意)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 무슨 일이든 意가 없으면 되는 게 없다. 필의(筆意)가 우러나야 붓글씨를 쓸 것이고, 용의(用意)가 있어야 한턱을 낼 것이고, 성의(誠意)가 있어야 남과 자신을 위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할 것이고, 요의(尿意) 변의(便意)를 느껴야 오줌이나 똥을 눌 게 아닌가?
남에게 선물을 줄 때 미의(微意)라고 말하는 것도 뇌물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작은 정성이라면 탓할 일이 못 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냉혹한 진실보다 선의(善意)의 거짓말이 더 낫고 필요할 때가 많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또 근본적으로 악의(惡意)를 가진 인간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컨대 한자를 잘 모르면 잘못된 표현을 하고, 맞춤법을 틀리고, 엉뚱한 말을 지어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말은 오류 여부에 대한 확인도 거치지 않고 삽시간에 퍼져 유통된다. 유감스럽게도 엉뚱하게 지어낸 말과 틀린 맞춤법에는 유통기한도 없다.
그런데 나도 최근에 어이가 없는, 아니 어의가 없는 말을 들었다. 어떤 사람이 메일을 보내 말하기를 내 글이 감출맛 난다고 칭찬해준 것이다. 기분은 일단 되게 좋은데, 그가 감칠맛이라는 말을 잘못 알고 쓴 건지 쓰다 보니 틀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침을 춤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감칠맛은 혀를 휘감아 붙들어 매는 것처럼 잊히지 않고 늘 마음에 감돌 정도인 맛을 뜻하는 말이다. 대체 어떤 음식이 이럴 수 있을까? 알고 보면 감칠맛은 대단한 맛인 것이다. 말의 뜻은 이렇지만 나는 그 사람이 감출맛이라고 틀리게 써 보낸 게 오히려 고마웠다.
글을 쓰려면 작의(作意)가 어설프고 쉽게 드러나지 않게 잘 감추면서 좀 더 은근하고 저절로 우러나게 쓰라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 독자들이 감춰진 맛을 스스로 찾아 맛보도록 쓰는 게 바로 감출맛 나게 쓰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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