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사들이 미래 먹거리를 찾아 동남아 시장에 진출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 보험판매 채널을 구축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해명이지만, 단기실적에 급급한 최고경영자(CEO)들이 해외손실을 부담스럽게 여겨 소극적으로 경영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9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국내 생명보험사의 지난해 상반기 해외점포 당기순이익은 마이너스 1,400만달러를 기록했다. 수입 보험료가 비용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데, 2011년 상반기(-760만달러)에 비해 적자 폭이 더 커졌다. 손해보험사의 지난해 상반기 해외점포 당기순이익도 손해율(거둬들인 보험료 가운데 피해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789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동남아 시장에 진출한 국내 보험사는 6개. 중국에 삼성화재, 삼성생명, 현대해상, 한화생명 등 가장 많은 4개사가 나가 있다. 이밖에 태국(삼성생명), 베트남(삼성화재 한화생명), 인도네시아(삼성화재 LIG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한화생명)에도 진출한 상태다.
하지만 2005년 5월 중국에 발을 들인 삼성생명의 시장점유율은 1%가 채 안 된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중국인들이 아직 보험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보험 수요가 적은데다, 지역별로 인가를 받아야 하는 등 규제가 까다로워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중국인들 사이에 국영 보험사 선호도가 높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은 일찌감치 1997년 진출한 태국에서도 24개 생보사 가운데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1998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메리츠화재(메리츠코린도보험)도 시장점유율이 0.1%에 불과하다. 나머지 보험사들 역시 해외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동향분석실 부실장은 "상당수 보험사들이 '해외에서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라는 식의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게 현실"이라며 "해외사업 경험이 풍부한 인재를 내보내 전문성을 높이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병건 동부증권 연구원은 "보험산업의 특성상 덩치가 일정 규모 이상 되지 않으면 이익을 내기 어려운데, 해외시장에서 외부 여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사업을 키워왔는지 돌이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투자 실적이 회계상 손실로 반영돼 지급여력(RBC)비율을 깎아먹다 보니, CEO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사업을 진행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사업이 결실을 맺으려면 최소 5년은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데, 건전성을 평가할 때 해외투자 부문이 반영되기 때문에 CEO들이 부담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승건 대신증권 연구원은 "보험상품을 잘 팔려면 판매채널 구축이 중요한데, 해외시장에선 큰 회사를 인수하지 않는 이상 판매망 구축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해외시장의 성패를 언급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고 말했다. 현지인 설계사를 고용하고 교육시키는 등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간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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