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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0주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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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0주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인터뷰

입력
2013.06.0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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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굴복을 요구하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불가능"재개된 남북대화 채널 유지하며 정치 무관하게 경협 활성화한다면박근혜 대통령 대북정책은 90점 이상북한의 핵 카드는 일종의 대미 협상차원… 정부가 핵 연계시키면 대화 진전 없어한 방에 뭘 얻으려 말고 내실 기해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9일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상대의 굴복을 요구하면서 신뢰프로세스를 진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선(先) 행동을 요구한다든지 희망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는지 하는 식으로 신뢰프로세스를 지연시킨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를 바 없다"고도 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한국일보 창간 59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을 60점 이상으로 평가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정 전 장관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 대화 국면과 관련해 "남북간 끊어졌던 대화가 이어져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본격 출범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도 했다.

당초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정세현 전 장관이 말하는 통일의 길'을 들어보려 했지만 서울 역삼동 개인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남북 장관급 회담으로 이어졌다. 정 전 장관은 장관급 회담에 나서는 우리 정부를 향해 "한 방에 무슨 답을 얻으려 하지 말고 남북대화를 정상적이고 정례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한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구상 자체만으로 60점은 이미 넘었다. 이미 대화를 시작했고 정치적 상황과 관련없이 인도적 지원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정경분리 원칙을 지키고 구상을 실천에 옮기면서 대화채널을 유지한다면 90점 이상도 주고 싶다."

-신뢰프로세스가 정상 가동될 수 있는 조건은.

"정치상황과 무관하게 지원을 하고 남북경협을 활성화해야 한다.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고 밀어붙이면 진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상대의 굴복을 요구하면서 신뢰프로세스를 할 수는 없다"

-6년여 만에 남북 장관급 회담이 열리게 되는데.

"정부가 '원칙을 고수하고 북한을 압박하니 우리가 제안한 회담을 수용했다'는 식으로 북한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 정부는 개성공단 원부자재 반출을 위한 실무당국자 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4개 이상의 의제를 제시하며 판을 키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우리 제의에 응했다는 것은 견강부회다. 외형적 이니셔티브에 집착하지 말고 내실을 기해야 한다."

-본 회담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나.

"북측은 인민 경제 발전에 필요한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 쪽에서 실리를 얻으려 주력할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실무접촉에서 의제로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본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들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어떤 전략으로 나가야 할까.

"정부는 핵 문제까지 논의하고 싶어한다. 실무회담에서 합의하건 안 하건 북핵 문제를 비켜가면 국내정치적으로도 문제가 클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 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지 남북간엔 할 얘기는 없다'고 나오면 곤란해진다. 6자회담이 여러 차례 열리고 9ㆍ19성명까지 나왔음에도 이러고 있는데 남북간에 만나 돌파구를 기대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북한은 본 회담에 어떻게 나올 것으로 예상하나.

"자신들이 제안한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6ㆍ15선언ㆍ7ㆍ4성명 기념행사 공동개최 문제를 빨리 합의보려 할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문제는 북쪽에서 절실한 문제다. 김정은이 인민경제 발전과 핵 무력 병진노선을 선언했는데,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대미협상 차원일 수 있고 내부적으로는 인민경제 발전이 중요하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 북한 요구만 들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박근혜정부가 말로는 이명박정부와 다르다고 하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것과 똑같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라'는 얘기만 한다. 하지만 '핵에 대해 먼저 의지를 표현하면 이걸 해주겠다'고 연계시켜 선후 문제가 되면 진전이 없게 된다. 미국의 사인도 없는데 북한이 남북회담에서 핵 카드의 위력을 스스로 약화시키겠는가."

-6ㆍ15선언 공동행사는 가능할까.

"회담 일정상 금년에는 못할 것이다. 대신 북쪽은 7ㆍ4성명 행사 때 6ㆍ15선언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만든다거나 7ㆍ27 정전협정 60주년과 연계하는 공동행사를 어떤 식으로든 제안할 것이다. 8ㆍ15때 자신들이 내려온다고 할 수도 있다."

-남북 장관급 회담이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질 수 있을까.

"장관급회담의 경과를 지켜보는 미국이 '이 정도 되면 우리가 직접 나서서 북을 설득하든 압박하든 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 미중 정상회담을 남과 북이 지켜보고, 한중정상회담 결과를 북쪽도 지켜보면서 전략을 짜 나갈 텐데 어쨌건 늦어도 초가을엔 6자회담이 열려야 한다."

-김정은의 방중 가능성은.

"최룡해 특사가 시진핑 주석에게 친서를 전달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중간에는 내밀하게 얘기가 오가기 때문에 예단하기 힘들다. 김정은이 절박한 이유가 있을 때 가겠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 수 없고, 동북아 헤게모니를 놓고 중국이 필요하면 김정은 방중 카드로 미국을 견제할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은.

"북에선 자기네 최고지도자를 만난 사람을 접견자라고 명명해 높게 대접한다. 박 대통령이 저쪽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자였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이 올 경우 청와대 예방을 하게 되고 거기서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비무장지대 평화공원 구상은 실현 가능한가.

"1982년 전두환 정부의 남북간 20개 시범실천사업 속에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유엔사와 조선인민군이 협의해야 하고 복잡한 문제라서 추진되지 못했다."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은?

"6자회담의 가능성이 높아지면 오히려 직전에 몸값을 높이기 위해 무슨 일을 벌일 수 있다. 과거에도 회담이 안열리는 틈새에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그 뒤에야 6자회담에 나간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감시를 위해서라도 북한을 무조건 대화로 끌고 가고 회담이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법은 있나.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미국도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 약속을 지켜야 한다."

-통일은 언제쯤 이뤄질 것 같나.

"남북의 의지나 통일지향적인 여론 같은 통일의 구심력이 통일을 반대하는 힘, 4강의 세력각축 같은 원심력보다 커질 때 가능하다. 독일은 두 원심력인 미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소련이 붕괴하면서 가능했다. 서독의 동방정책은 정권이 바뀌고도 꾸준히 유지됐지만 우리의 햇볕정책은 10년도 못돼 뒤집는 작업이 시작됐고 원점으로 돌아갔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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