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종금 비리 사건에 연루돼 2005년 유죄가 확정됐던 한광옥(71) 전 민주당 대표의 재심 청구가 1년 4개월 만에 기각됐다. 한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에서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았다가 뇌물을 받은 전력이 불거지자 "재심을 청구한 상태"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한 전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있던 2000년 1월 김호준(54) 당시 보성그룹 회장과 안상태(70) 나라종금 사장을 청와대에서 만나 '나라종금의 퇴출을 막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05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대검 중수부가 지휘한 당시 수사에서 유일한 직접 증거는 '3,000만원을 준비해 한 전 대표에게 줬다'는 김 전 회장과 안 전 사장 등의 진술이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고교 후배인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월 '검찰의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시키는 대로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 법정 진술도 각본대로 했지 사실이 아니다'는 내용의 '양심고백서신'을 써 한 전 대표에게 줬고 이를 근거로 한 전 대표는 지난해 2월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양심고백'을 신뢰할 수 없다고 봤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황병하)는 "서신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가 전혀 없다"며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서신은 김호준의 공소시효(당시 기준 5년)가 만료돼 위증죄로 형사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사라진 이후 작성됐다는 점에 비춰 서신 기재만으로 재심 대상 판결의 증거가 된 김호준 안상태 등의 증언이 모두 허위였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3,000만원을 직접 전달하거나 조성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도 기각 사유로 들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당시 한 전 대표에게 3,000만원을 직접 건넨 인물은 안 전 사장이고, 돈을 준비한 것은 전영남 당시 나라종금 부사장이다. 한 전 대표는 새로운 증거를 추가 확보할 경우 다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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