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던 지난달 26일, 독일 함부르크 시내의 한 행사장에는 400여명의 젊은 여성이 몰려들었다. 자신이 쓰던 옷과 구두를 가져와 플라스틱 칩으로 바꾼 후 다른 사람의 물건을 샀다. 이날 하루 거래된 물건만 3,500여점. 독일에서 3년 전 시작돼 인기를 끌고 있는 의류 교환 행사 스왑인더시티의 풍경이다. 이 행사는 올해 베를린, 뮌헨, 슈투트가르트 등 독일 대도시 8곳을 순회하며 열리고 있다.
스왑인더시티는 기존 벼룩시장과 형식은 같지만 분위기는 매우 새롭다. 분홍색 조명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행사장에서는 DJ가 음악을 들려주고 칵테일을 판다. 독일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최신 유행이다. 함부르크 행사에 참석한 여배우 노바 마이어헨리히는 자신이 중고 의류 마니아라며 "이런 행사의 매력은 어떤 물건을 발견할지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유에 집착하는 않는 소비자의 등장
공유경제의 확산은 소비자 인식이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표다. 변화는 젊은 세대에서 뚜렷하다. 이들은 집과 자동차를 꼭 사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전미부동산업자협회는 "젊은이들은 여러 지역을 오가는 유동적 삶을 살려고 하지 부동산에 묶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 자동차 시세 분석업체 에드문즈에 따르면 18~34세 미국인의 새 차 구입 비율은 2006년 16%였지만 지난해 12%로 줄었다. 미국의 회원제 차량 공유서비스인 집카를 자주 애용하는 미국 유학생 박태영(27)씨는 "카 쉐어링은 내가 필요한 시간만큼만 이용하고 돈을 내면 돼 시간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익이다"고 말했다.
집카의 영국 지사는 최근 2차세계 대전 이후 태어난 18~54세 사이의 소비자들을 '사는 대로 지불하는 세대(pay-as-you-live)'로 정의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들은 "소유의 표면적인 가치보다 실제 가치를 판단해 재화와 서비스를 빌리는 세대"다. 독일의 공유경제 현황을 연구한 하랄드 하인리히 로이파나대 사회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교육ㆍ소득 수준이 높은 젊은 세대의 공유경제 참여 비율이 높다. 이들은 타인에 대한 높은 신뢰와 혁신적 가치에 대한 취향을 가진 '사회 혁신적 공유 소비자'로 규정되며 독일 14~90세 인구의 약 4분의 1인 23.5%를 차지한다.
카이스트 정지훈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와이세대(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층으로 1982~2000년 출생한 세대)에서는 소유를 통해 과시하고자 하는 경향이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에도 파고드는 사회의식
미국 리서치 기관인 라티튜드와 공유경제 허브 웹사이트인 쉐어러블의 201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유경제 참가자들의 67%가 공유경제의 가장 큰 이득으로 '절약'과 '사회에 좋은 일'을 동시에 꼽았다. 공유경제 바람이 단순히 싼 것을 찾는 현상은 아니라는 뜻이다.
영국의 의류 교환 행사 기획 업체 스위싱의 창업자 루시 셰아는 "의류 교환을 시작한 여성들은 차보다 자전거를 타고 로컬 푸드(지역에서 생산되는 식품)를 사는 등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고 증언했다. 공유경제 참여 경험이 소유의 기쁨과 다른 다양한 가치에 눈을 뜨게 하기 때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베테랑 여행자 에이프릴 리네는 지난해 추수감사절을 에어비앤비로 알게 된 르완다의 사회적 기업가의 집에서 보냈다. 그는 "집주인이 에어비앤비로 돈을 벌어 현지 젊은이들의 기술 교육에 투자할 계획을 들려줬다"며 "르완다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그는"20여년간 80여개국을 여행했지만 에어비앤비 덕분에 여행을 다시 정의하게 됐다"며 "일상 속에서도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양석원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운영팀장은 "젊은 세대는 공유경제가 단지 절약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멋져 보이기 때문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대안의 삶으로까지 확장
전세계 금융위기 후 시장의 논리만 좇으면 풍요롭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무참히 무너진 것도 공유경제 활성화의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하인리히 교수는 공유경제 활성화의 사회적 요인으로 ▦대안적 소유ㆍ소비 형식에 대한 인식과 실천 ▦사회적 가치와 삶의 질에 대한 관심 ▦환경 문제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자각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 형성 등을 꼽는다. 그는 "공유경제는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이 아닌 1960년대에 촉발된 성장의 한계와 대안적 삶에 대한 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유경제 참여자들이 1960년대식 히피는 아니다. 가난을 기꺼이 수용하기보다 좋은 것을 적은 비용으로 누리고자 하는 자본주의적 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공유경제 시장이 자동차와 공구 등 실용적 자원을 넘어 디자이너 의류와 미술 작품 같은 고급 물품까지 포괄하고 있는 점은 최근의 공유경제 논의가 자본주의적 경제를 저버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국 런던에 기반한 집 공유 중개 플랫폼 원파인스테이는 빈 방을 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에 거래하는 에어비앤비와 달리 호텔과 비슷한 가격으로 호텔보다 더 독특하고 쾌적한 고급 주택을 빌릴 수 있게 한다. 이 업체의 경쟁자는 4성급 호텔이며, 이는 공유경제가 가진 또 다른 단면이다.
런던ㆍ파리ㆍ베를린=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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