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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영의 덧차원일기장/6월 10일] 과학자의 조국, 과학의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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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영의 덧차원일기장/6월 10일] 과학자의 조국, 과학의 국경

입력
2013.06.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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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동아시아 입자물리학자들을 위한 여름학교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이 여름학교는 한국, 일본, 대만, 중국의 젊은 물리학자들과 학생들이 모여서, 현재 활발하게 활약하는 과학자들의 강연을 듣고 토론하며 공동 연구의 싹을 틔우고자 하는 자리다. 올해 초청된 연사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니마 아르카니하메드 교수다. 그는 20세기가 끝나기 직전에,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외에 덧차원이 존재한다면 중력은 왜 다른 힘들보다 그렇게 약한가, 그리고 힉스 입자의 질량은 왜 그렇게 불안정한가라는 현대 입자물리학의 중요한 두 가지 문제를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짧은 시간 만에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고, 얼마 전까지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다가 현재는 아인슈타인이 만년을 보낸 것으로 유명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는, 21세기 들어 가장 촉망 받는 이론물리학계의 슈퍼스타다.

그런데 아르카니하메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부모가 둘 다 이란인이다. 물리학자였던 그의 부모는 미국에 머물며 그를 낳았는데, 1979년 이란혁명이 발발한 후 이란으로 돌아갔다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문제가 생겨서 온 가족이 다시 탈출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아르카니하메드의 가족은 캐나다에 정착했고 그는 그 곳에서 대학을 다녔다.

지금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이론물리학자가 이란 출신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각될지 모르겠다. 한 사람을 더 들어보자. 오늘날 이론물리학의 주요 분야인 끈 이론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우리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2차원 껍질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반영일 수도 있다는 홀로그래피 원리다. 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서 많은 물리학자들을 충격에 빠뜨린 후안 말다세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학까지 마친 아르헨티나인이다. 그도 아르카니하메드처럼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다가 역시 지금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

몇 년 전 조작된 논문으로 대한민국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던 한 과학자는 한참 이름이 높아질 때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분명 과학 이론은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이 성립하지만 과학자에게는 엄연히 국적이 있고 가족이 있으므로 참으로 옳은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과학은 흔히 과학자의 국적을 잊는다. 앞에서 이야기한 아르카니하메드나 말다세나의 예가 너무 특수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른 과학자를 들어보자. 폴란드에서 태어난 마리아 스쿼도프스카는 파리에서 대학 공부를 마쳤을 때 피에르 퀴리와 결혼해서 마리 퀴리가 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폴란드로 돌아갔을 것이다. 몸은 파리에 머물렀지만 마리 퀴리는 고향 폴란드를 잊지 않아서 두 딸에게 폴란드 어를 가르쳤고 그녀가 최초로 발견한 방사성 물질에 조국의 이름을 딴 폴로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파리의 팡테옹에 묻혀 있는 마리 퀴리는 어디까지나 프랑스의 과학자다. 그녀의 연구 업적은 프랑스 과학계의 것이고, 그녀가 가르치고 제자를 키워낸 곳은 파리의 대학이다.

과학자에게는 물론 조국이 있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자의 조국이 어디인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과학을 하는가이다. 과학 연구의 성과는 실제로 과학 활동을 하는 곳에 축적된다. 실제로 과학을 하는 곳에서 젊은 과학자들이 길러지고, 뒷받침하는 기술과 정책이 발전하고, 결국은 문화가 이루어진다. 종종 사람들은 왜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가를 이야기하지만, 올바로 말하자면, 아직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중요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야 맞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과학을 실제로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과학이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아직 맨땅과 다름없는 곳에서 직접 과학연구를 하려고 분투하는 과학자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분명 과학의 법칙에는 국경이 없지만 인간의 과학 활동에는 국경이 있다.

이강영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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