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보여주는 경제 정책에 대해서, 나는 대체적으로 후한 평가를 하는 편이다. 아마 진보 진영에서 창조경제에 대해 내가 하는 평가가 가장 후할 것이다. 그렇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통상 정책도 예전보다는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 대북 정책 역시, 한 건 별로 없으면서도 많은 성과를 가질 수 있는 조건들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 박근혜 경제가 제대로 못하는 것을 꼽자면 역시 토건 정책이다. 역대 정권들이 아파트 정책과 함께 수렁에 빠졌다. DJ도 그렇게 잘 했다고 보기 어렵고, 참여 정부 역시 넋 놓고 있다가 부동산 폭등과 함께 정권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부동산 정책은, 이게 참으로 칙칙한 분야이다. 합리적으로 경제에 대해서 논의하던 사람들도 아파트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강력한 토건 옹호론자로 변해버린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는 책을 차분히 읽다가 생각해보니 '솔로 현상이 그 사태의 맨 기저에 흐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도시 근교의 단독주택 단지가 미국이 주거 문제를 풀었던 기본 방식이다. 아빠는 도시로 차를 몰고 출근하고, 엄마는 하루 종일 아이를 키우고, 이런 포디즘 시대의 가정에 특화된 주거 상품들이 솔로 시대에 더 이상 유지되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빚 내서 집 사고, 사회가 그 빚을 유지해주던 거품 모델이 '싱글턴'과 함께 종료된 것이다.
단독주택을 아파트로 바꾸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지금 우리 사정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베드타운에 위치한 신도시들, 여기에 위치한 방 세 개짜리 아파트들은 역시 포디즘 시절의 거품 위에 서 있는 아파트들이다. 그리고 이 아파트를 받아줄 다음 세대들이 없다는 것, 그게 내가 보는 사태의 핵심이다. 신빈곤이라는, 청년 세대의 빈곤화와 솔로 현상이 동시에 벌어진다. 한국의 경우는 선분양이라는, 기상 천외의 건설사 특혜 제도가 하나 더 개입한다.
이번에 여야가 '야합'한 리모델링의 수직증축 허용이 시사하는 메시지가 몇 가지 있다. 리모델링은 송파구 일부에서 이미 안정화된 제도처럼 작동하고 있는데, 서울을 벗어나니까 이 돈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게 내가 본 이 사건의 핵심이다. 2~3층을 더 올려서 누군가에게 자기 집 고치는 돈을 대신 내게 하겠다, 이 얘기인데, 누군가 속아줄 사람을 정치권에 로비를 해서라도 찾아야 할 정도로 그들의 여윳돈이 없었다, 그런 것이다. 분당, 일산, 넉넉한 중산층이라고 하기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자, 이제 남의 집 고치는 돈을 대신 내줘야 하는, 즉 속아줘야 하는 아빠들의 눈으로 시각을 옮겨보자. 일반분양이나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의 경우에는 이미 호수가 결정되어 있으므로, 이 새로운 아빠들은 새로 증축된 꼭대기 층에 배정될 것이다. 정부가 뭐라고 말하든 위험한 건물이므로, 이런 아파트들은 제값을 받기가 어렵다. 손해를 보면서도 속을 아빠들이 있을까? 진짜 문제는 분양제도 그 자체이다. 이미 분양된 기존 아파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2~3년 분양을 기다리는 젊은 아빠, 이런 사람은 없다.
자기 집은 자기 돈 내고 고치는 것은 상식이고, 그게 감가상각의 원칙이다. 뉴타운으로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특히 도시빈민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했다. 수직증축, 이제는 신도시의 중산층 차례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수직증축은 위험하다고 안 해줬는데, 그게 갑자기 안전해질 리가 있는가? 분담금 내려갈 거라고 업자들에게 속아서 잘못 동의해줬다가는 국민행복기금 창구에 줄 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최근 수입차 구매에 20~30대가 늘었고, 상당수가 집이 없는 세입자이다. 죽어라고 집부터 사던 시절 대신, 집은 포기하고 수입차로 전환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겼다. 주택보급률은 예전에 100% 넘었다. 정부는 무조건 집 사라고 하지만 청년들은 신경도 안 쓴다. 현실이다.
우석훈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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