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매각도, 공개 매각도 무산됐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주채권은행조차 인수를 포기했다. 그 결과 11년 만에 또 다시 법원에 모든 운명을 맡겨야 하는 비운의 기업이 됐다. 국내 해운업계 3위, 벌크운송에선 1위 업체인 STX팬오션 얘기다.
STX팬오션이 결국 7일 서울중앙지법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STX조선해양ㆍ중공업 등 그룹 계열사 5곳이 채권단 자율협약을 체결 또는 신청한 상태에서, 핵심 계열사 중 하나였던 STX팬오션마저 법정관리 수순에 돌입함에 따라 STX그룹의 해체도 가속화되게 됐다.
유천일 STX팬오션 신임 사장은 이날 "회생절차 개시 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재무개선을 추진해 최단 기간 내 기업회생절차를 졸업하고 조기 경영정상화를 도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TX그룹은 유동성 위기 이후 STX팬오션을 매물로 내놓았다. 하지만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자 주채권은행이자 2대 주주인 산업은행에 '인수 SOS'를 쳤다. 하지만 산은은 선박금융 2조5,000억원, 회사채 1조2,000억원, 은행 채권 7,000억원 등 4조 4,0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떠안고 있는 이 회사 인수에 불가입장을 통보했고, 결국 법정관리행을 택하게 됐다.
STX팬오션은 2008년 영업이익 6,790억원을 기록하는 등 한때 STX조선해양과 함께 그룹의 양대 축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물동량 감소로 경영난이 심화, 결국 그룹 몰락의 주범이 되고 말았다. STX팬오션의 전신인 범양상선 시절 이미 법정관리를 겪은 터라, 10여년 만에 두 번이나 법원에 생사를 맡기는 비운을 맞게 됐다.
STX그룹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은 지난 4월 STX건설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그룹 지주회사인 ㈜STX와 STX조선해양 STX엔진 STX 중공업은 이미 채권단 자율협약이 체결됐고, 시스템 통합업체(SI)인 포스텍도 자율협약을 신청한 상태다. STX에너지와 STX다롄ㆍ프랑스ㆍ핀란드 등 해외계열사들도 매각이 추진 중이다. 지주회사 체제유지 여부에 대해선 채권단과 금융당국, STX그룹 간에 이견이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룹은 해체 혹은 대폭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다만, STX팬오션의 법정관리 신청이 그룹 구조조정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전망. 류희경 산은 기업금융 담당 부행장은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로 다른 계열사의 자금 사정이 압박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를 감안해 다른 계열사의 구조조정은 차질 없이 이뤄지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STX팬오션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회사채를 떠안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의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STX팬오션이 발생한 회사채는 1조2,000억원에 달하는데, 법원판단에 따라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1,200억원 정도는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어, 이들 개미투자자들의 큰 피해가 예상된다. 한 시장관계자는 "위험기업에 대한 회사채 기피현상이 심화돼 채권시장 전체가 경색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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