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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계란·유기농 양파… 먹을 사람들 생각만해도 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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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계란·유기농 양파… 먹을 사람들 생각만해도 큰 보람"

입력
2013.06.0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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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고춧잎! 나물도 해놓고 된장에 박아놓기도 하고, 여기저기 퍼주기도 하세요.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다고 하니까 많이 드시고요.' 두부 한 모, 토종 계란 8개, 유기농 양파 3개, 쑥갓 200g 등 8종류의 채소가 상자 하나를 가득 채웠다. 사회적 기업 '언니네 텃밭'이 도시지역 소비자에게 보내는 채소 꾸러미. 파릇한 채소 사이에 편지 한 장이 꽂혀있다. '토종 닭알은 조계옥 언니의 오골계가 낳았고, 유기농 양파는 조상옥 언니네 텃밭에서 재배했어요. 배추는 아직 통이 차지 않았지만 비 온 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해서 부랴부랴 수확했어요'언니네 텃밭 오산공동체 농민들은 매주 농민들의 일상과 채소들을 소개하는 편지를 상자와 함께 보낸다. 어느덧 101번째. 그 '작은' 실천에서 그들은 한국 농업의 미래를 찾고 있었다.

지난 4일, 금계천과 섬강 줄기가 맞닿은 합수개에 자리한 강원 횡성군 공근면 오산리. 바람소리 말곤 큰 소리 날 일이 없다는 조용한 동네가 웃음 소리로 왁자했다. 80평 규모의 작업장에 6월 첫째 주 채소 꾸러미를 보내기 위해 여섯 언니들이 모였다. 나이 순으로 조계옥(83), 김복희(73), 박은자(65), 신상옥(65) 정복련(59), 한영미(48) 씨. '왕언니' 조계옥 씨가 배추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배추가 아직 깨끗하잖아. 된장, 고추장 뭐 안 찍고 그냥 먹어도 아주 달아. 쑥갓도 향기가 그만이지." 발송 꾸러미는 모두 75개. 2년 전 22개로 시작한 때에 대면 비약적으로 성장한 셈이다.

언니네 텃밭공동체는 2009년 강원 횡성에서 처음 생겼다. 6월 현재 전국에 존재하는 공동체 수는 16개. 오산공동체는 횡성에서 언니네 텃밭 사업을 시작한 한영미 횡성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 대표 등이 주축이 돼 도내에서 3번째로 꾸려졌다.

한씨는 "한 언니가 친구를 데려오고, 그 언니가 귀농한 이웃사촌을 끌어 오고, 토종닭 키우던 언니가 합류하고…, 그렇게 모여 지금의 공동체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오산리 60가구 중 7가구의 여성이 오산공동체 회원이다.

농업의 새로운 대안으로 산지 농산물 먹기 캠페인인 로컬푸드 운동이 본격화한 게 10여 년 전부터다. 거대 농업회사의 농산물이 아닌 지역 공동체 주민이 생산한 것을 먹자는 것이다.

캐나다 100마일운동, 프랑스 아맙(AMAPㆍ농업과 농민을 지키는 연대)운동, 앞서 시작된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消)운동 등이 그것이다. 2007년 미국농업총조사에 따르면 농산물 직거래 금액은 10년 전인 1997년의 551만 달러보다 200배가 넘는 12억 달러로 늘었고, 일본의 경우 2009년 초중등학교 급식 농산물의 90% 이상이 지역 농작물로 충당됐다. 언니네 텃밭공동체의 꾸러미 농사도 한국식 로컬푸드 운동의 한 갈래다.

언니네 텃밭 회원들은 각자 20~50평 규모의 소규모 텃밭에서 비료 농약 안 쓰고 농사를 짓는다. 40년 농사꾼 박은자 씨는 "농약 비료 팍팍 쓰다가 처녀적 방식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고생스럽긴 하다. 잡초 매느라 힘들고, 벌레 먹을까 신경 쓰이고, 빠르게 안 자라니 답답하고. 그래도 좋은 채소를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보람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농업이 기업화할 수록 농사는 개인화한다. 하지만 꾸러미 공동체 덕에 소원했던 주민들 사이도 가까워졌다. 정복련 씨는 "매주 모이는 건 물론이고, 자주 놀러도 다녀요. 언니들 생일 때마다 원주 시내로 심야 영화를 보러 가는데 2011년 봤던 '써니'가 생애 처음 본 영화라는 언니도 있어요"라며 웃었다.

오후 두 시. 쑥갓 포장을 끝낸 언니들이 늦은 점심을 먹는다. 유기농 양파와 배추, 쑥갓 등 건강한 밥상이다. 식사 후 총무인 한씨가 박은자 씨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넨다. 5월 채소 판매 수익 명세서다. 명세서 하단에 찍힌 금액은 96만원. 박씨는 "40년 농사를 지었지만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갖고 돈을 번 것은 언니네 텃밭 하면서 처음"이라며 웃었다. 한 씨는 "수십 년씩 농사지어도 통장은 대부분 남편, 아들 명의죠. 여성이 농민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300평 이상의 땅을 소유하고 연간 100만원 이상 농산물 출하 근거를 갖춰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요. 그런 조건을 맞추는 여성 농민들은 11% 정도에 불과해서 여성 농민들은 법적, 사회적 지위가 열악하죠"라고 말했다. 언니네 텃밭 회원들은 매달 월급처럼 수익을 분배 받는다. 오산공동체의 지난 해 수익금은 9,000여만 원. 농민 1인당 약 1,000만원, 월 90만원 정도가 분배됐다. 제철 꾸러미는 택배비 포함 회당 2만5,000원. 보통 8~9가지 제철 채소와 과일이 들어간다. 가격은 마트보다 약간 비싸고 생협보다는 조금 싼 수준이다. 언니네 텃밭 윤정원 사무장은 "전국에서 2010년 15,000개, 2011년 30,000개, 2012년 34,000개 이상 제철꾸러미를 발송했다. 연간 15%이상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현재 소비자 회원은 2,000여명.

언니네 텃밭은 그렇게 작지만 꾸준히 농촌을, 농업을, 도시 소비자의 식탁을 바꾸고 있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농림축산식품부 2011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농산물 직거래 비중은 전체 농산물 유통량의 4%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 달 27일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을 통해 2014년까지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법률을 제정하고 2016년까지 직거래 물량을 전체의 10%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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