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의지가 있고, 그 의지는 원칙이나 소신의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특히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내게도 타인을 대하는 나만의 원칙 같은 게 있다. 가급적 폐를 끼치지 않고, 그가 내게 폐를 끼치지 않는 한 그를 상식적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산뜻한 예의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런데, 거기에는 사랑이 틈입하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사랑은 정신적인 영역에서든 육체적인 영역에서든 상호 적극적인 교섭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가톨릭 교리 절차에 의해 성경을 필사하고 교리서를 읽으면서 타인의 존재를 환대하고 그의 고통을 공유하며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 그리스도 교인이 타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을 받들고 나누는 것이 구체적으로 전제된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상한 결론인지 모르지만 이것이 맞다면, 애초부터 사랑에 두려움을 갖는 자는 그리스도 교인이 되기 힘든 것이 아닌가. 사랑이 두렵다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그런 이가 어둠 속에, 우리의 눈 밖에 존재하지 않는가.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그에게 씌워 있는 그 두려움부터 한풀씩 벗겨주는 게 사랑의 포교자들에게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설가 김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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