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북한과 관련한 페이퍼컴퍼니 4개가 설립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유령회사들의 성격과 설립자의 정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김정일 해외 비자금이나 무기밀매 등과 관련해 북한의 페이퍼컴퍼니 존재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많았지만 실제 확인되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6일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공개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5차 명단에 따르면 북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문광남은 2004년 11월19일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 '래리바더 솔루션'을 세웠다. 문씨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본인의 주소를 평양시 모란봉으로 적었다. 모란봉은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 등이 위치한 평양의 대표적인 중심지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원이 탄로 나는 걸 막기 위해 가명을 썼을 것"이라며 "주소를 평양으로 적은 것으로 봐서는 고위층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에 나와 있는 문광남은 지방정부인 자강도 성간군 위원장으로 돼 있으나 페이퍼컴퍼니 등기자와 동일인물 같지는 않다.
뉴스타파 관계자는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문씨가 인민무력부 소속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나 러시아에서 만든 무기를 거래로 남긴 이득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관리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회사는 2009년 10월 문을 닫았다.
또 버진아일랜드에 2000년 11월 세운 '천리마'와 2001년 2월 설립한 '조선' '고려텔레콤'등 북한식 상호로 설립된 페이퍼컴퍼니 3곳에는 임종주(Lim Jong Ju)와 중국동방명주석유 회장인 왕육관(Wong Yuk Kwan) 2명이 공동 이사로 이름이 올라 있다.
뉴스타파 측은 1999년 북한의 이동통신사업권의 절반을 300만 달러에 사들인 '랜슬럿 홀딩스'의 창업자라고 밝혔다. 동방명주석유는 랜슬럿 홀딩스로부터 북한 이동통신사업권의 50%를 사들인 회사다.
이 유령회사들이 설립된 2000~2001년은 북한이 1998년 8월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대포동 미사일을 처음 발사한 2년 뒤로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가 가해지던 시기다. 이 때문에 이동통신 수주 대가로 북한에 뒷돈을 대주기 위한 용도로 만든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들 페이퍼컴퍼니가 북한 고위층의 비자금 조성이나 마약ㆍ슈퍼노트(100달러 위조 지폐) 유통, 무기거래 등을 위해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흘러 든 자금이 핵 개발 등에 쓰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과거 중국, 마카오 등에 개설한 계좌들이 노출되면서 무기거래 등에 쓸 유령회사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준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심해질수록 북한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외환거래가 가능한 우회로를 더 많이 만들어왔다"며 "이번에 드러난 것은 북한이 세운 페이퍼컴퍼니의 일부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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