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이 어느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다. 위로는 언니에 밑으로는 동생에 치여서 둘째들이 생존력이 강하다는 속설이 있는 것처럼 우리 둘째도 자기 개성이 강하고, 특히 자립심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첫딸을 얻고 너무나 기뻐서 온갖 예쁘고 좋은 옷과 신발을 사게 되었고 유모차든 장난감이든 첫딸에게는 정말 지극정성을 다했다. 그러다 4년 후 둘째를 얻게 되었고, 둘째에게는 언니가 입던 옷이나 신발 그리고 장난감이 고스란히 내려왔고 둘째만의 옷이나 신발 등을 산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다 2년 후 막내딸을 얻었다. 막내는 막내대로 귀여워서 새로이 사주게 되어 항상 둘째를 볼 때마다 뭔가 미안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들었다.
그런 둘째가 어느새 숙녀가 돼 이제 대학진학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하지만 딸 셋을 키우다 보니 각기 다른 개성과 품성을 가진 딸들이 다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특정 딸을 더 편애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둘째가 이메일을 통해 졸업파티 하는 사진을 보내왔다. 그 사진을 보면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둘째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딸 허리에 팔을 두르고 사진 찍은 그 남자 놈은 정말 맘에 안 든다. 딸아이의 남자친구 놈들은 어떤 놈도 일단 마음에 안 든다.
사실 난 둘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건 둘째가 다른 딸들보다 공부를 잘해서도,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아서도 아니고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다. 둘째가 일곱 살 때 유치원을 다니던 어느 휴일 오후, "일어나봐, 지금 잠이 와? 나 당신 때문에 정말 창피해서 이사가야 할 것 같아"하며 아내가 달콤한 낮잠에 빠져있는 나를 거칠게 깨웠다. 난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휴일에 낮잠 자는 것도 죄냐?"하며 겨우 일어났다.
아내는 팔짱을 낀 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당신 지금 둘째 유치원 좀 가봐. 거기 가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좀 보고오라고"하며 날 현관 밖으로 밀어 세웠다. 난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마지못해 어슬렁어슬렁 둘째의 유치원으로 향했다. 유치원엔 여름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의 재롱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그간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공작물들이 전시되고 있었고 유독 한곳에서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웃으면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작품이 바로 둘째가 그린 '우리아빠'였다. 다른 유치원생들은 '우리아빠'라는 제목의 그림에 모두들 넥타이를 매고 인자하고 다정한 모습의 아빠들을 그렸는데 (난 모든 그림이 다 증명사진 같았다) 유독 우리 딸만이 '우리아빠'라는 제목의 그림에 사각트렁크팬티에 민 소매를 입고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있는 아빠를 그린 것이다. 아내는 그 그림을 보고 질겁을 했다. "당신이 얼마나 아무렇게나 살았으면 어린 딸이 아빠의 모습을 그리는 게 저런 거냐고?"하며 나를 원망했다.
난 사람들이 딸아이의 그림을 보고 웃고 떠들고 나와 우리가족을 걱정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는 순간 우리 딸아이가 매우 자랑스러웠다. 아 둘째가 뭔가 다르구나. 둘째의 그림만이 유독 천편일률적인 증명사진 같은 '우리아빠'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를 한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창피하긴 뭐가 창피해. 저 생생한 묘사를 보라고. 내가 오른손에 항상 리모컨을 들고 있는 것까지 정확하게 캐치한 저 그림, 난 무척 자랑스러운데"라고 하자 아내는 내 옆구리를 꼬집으며 "꿈보다 해몽이라고. 이 그림을 보고 그런 소리가 나와? 좀 앞으로 생활을 반성하고 개선해야 되는 거 아니야"라며 한번 더 나를 꼬집었다.
아내는 창피해했지만 사실 난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특히 둘째에게 내 피가 진하게 흐르는 진정한 '혈육의 정'을 느낀다. 이건 내가 둘째에게 예술혼을 불어넣어준 것임이 확실하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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