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대가로 혹독한 긴축을 강요한 것을 두고 뒤늦게 "긴축이 몰고 올 타격을 과소평가했다"며 뼈저린 반성을 했다. 그리스는 2010년 첫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세금을 높이고 복지재정을 축소하고 임금을 깎는 등 긴축의 고통을 국민에게 강요했지만 경기는 더욱 악화하고 있다.
IMF는 6일 공개된 내부보고서에서 "경기침체기에 재정 지출 축소, 세금 인상 등과 같은 긴축방안이 경제에 어떤 타격을 주는지에 대해 상당한 과소평가가 있었다"고 밝혔다.
IMF는 유럽연합(EU) 및 유럽중앙은행(ECB)과 함께 지금까지 2,000억유로(약 292조원)를 그리스에 지원했다. 긴축을 통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줄이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구제금융 이후 3년이 지났으나 당시 IMF가 예측했던 경기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스 경기는 6년 연속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올해도 경제규모가 4.6% 더 축소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실업률은 27%에 이르는데 올해 28%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IMF 보고서는 "시장의 자신감은 회복되지 않고 있고 은행 예금은 30%가 줄었으며 지극히 높은 실업률 속에 예상했던 것 보다 더 깊은 침체 속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구제금융과 긴축 정책으로 얻은 것은 그리스를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에 머물도록 하고 그리스의 위기가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을 비교적 억제한 것 정도가 꼽혔다.
IMF는 그리스 구제금융 정책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로 그리스 정치권의 추진력을 과신한 점을 꼽았다. 정치적 혼란 속에 그리스 정부가 지하경제를 줄이는 등의 세수기반 확보, 공공지출을 줄이기 위한 공공기관의 민영화 등의 과제를 추진할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대외비로 분류됐으나 월스트리트저널에 일부가 보도되면서 IMF가 50페이지 전문을 공개했다.
IMF 대변인과 그리스 정부가 보고서에 대한 논평을 거부한 가운데 그리스의 최대 야당인 좌파정당 시리자는 대변인을 통해 "긴축정책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그리스를 인도주의의 위기로 몰아넣은 긴축정책은 당장 폐기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채탕감도 요구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긴축정책 폐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보고서는 "회계연도별 긴축목표를 완화하고 목표 달성기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그리스의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수십억 유로의 구제금융이 더 지원돼야 하며 그런 지원금은 마련돼 있지 않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