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6일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의함에 따라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의 근간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탄력을 받게 될 지 주목된다. 적어도 외형상으론 북한이 '도발엔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 두겠다'는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원칙에 기선을 제압당한 모양새다. 또 북한이 당국간 회담의 일시와 장소를 남측에 일임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어 남북관계에 긍정적 신호도 보이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 등 대남 위협 수위를 고조시킬 때에도 '북한은 올바른 길을 선택하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왔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출입기자단 오찬에서 "빨리 '북한은 정부를 상대로 대화를 시작해라' 이렇게 촉구해야 일이 풀린다"며 정부 간 대화를 촉구한 게 대표적이다. 일부에선 북한의 대화 제의에 대한 거부가 거듭되면서 '신뢰프로세스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지만 결국 북한의 당국간 대화 제의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유지해온 '원칙과 소신의' 대북 대응기조가 효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한꺼번에 작동하는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가동을 시작할 타이밍은 잡았다고 볼 수 있다"며 "박 대통령의 원칙에 일단 북한이 저자세를 보인 만큼 초기 단계에서 주도권을 쥘 여건도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박근혜정부가 한미 공조라는 기존의 북한 해법 틀에서 벗어나 한미중 3국 공조를 통해 북한을 효과적으로 압박한 것도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첫 발을 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본 궤도에 오를 경우 남북관계는 이전 정부와는 전향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가 성사될 경우 대선공약에 명시된 북한 인프라 확충과 국제투자 유치 등을 아우르는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향한 행보가 빨라질 수도 있다. 북한의 이번 대화 제의에도 자의든 타의든 외자 유치 등을 통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선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급진전으로 나아가는데는 적잖은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는 북미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와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 북한이 최룡해 특사의 방중 이후 중국과 미국의 압박에 따라 대화에 나선 측면을 고려할 때 회담에 성의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북한 대표단은 2011년 2월 남북 군사예비회담 당시 언론보도를 문제 삼아 도중에 회담장을 떠난 전례가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 당국이 회담 과정에서 실질적 행동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흐름을 잡아내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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