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생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홍역을 치렀던 택시기사 이모(30)씨는 왜 사건 초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
하의가 벗겨지고 얼굴 등에 심한 폭행을 당한 채 숨진 여대생 남모(22)씨 사건은 사건 발생 때부터 언론에 집중 조명됐고, 경찰도 계속 남씨를 태운 택시기사를 용의자로 보는 상황이어서 진범인 공익근무요원 조모(24)씨가 잡힌 뒤 이씨의 자세에 의문이 제기됐다.
실제로 경찰은 진범 조씨를 잡기 전까지 남씨가 택시를 탔던 주변과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에 설치된 CCTV 영상을 샅샅이 뒤졌고, 대구지역 법인 택시회사들을 모조리 탐문하는 등 1주일여간 문제의 택시를 찾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씨를 태웠다는 택시기사가 자진해 나타나지 않자 경찰은 범인으로 확신했다. 경찰이 이씨를 찾아 체포하는 과정에 강압적 행태 등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던 것도 이런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의문에 대해 이씨가 6일 인터넷 사진커뮤니티인 S클럽 게시판에 "저의 어리석음에 대해 알려야겠다"며 당시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남겼다.
이씨가 남긴 글에 따르면 이씨는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택시운전을 하는 생활패턴이어서 신문과 TV는 전혀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 28일쯤 한 라디오 뉴스에서 '25일 실종된' 이란 부분을 듣고는 마침 25일이 쉬는 날이어서 막연하게 '내가 쉬는 날 벌어진 사건이구나'라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피해자 남씨는 클럽에서 술을 마신 뒤 25일 오전 4시 20분쯤 대구 중구 삼덕119안전센터 앞에서 귀가하기 위해 이씨가 몰던 택시를 탔다. 이후 남씨를 클럽에서 만나 함께 술을 마셨던 범인 조씨는 다른 택시를 타고 남씨가 탄 이씨의 택시를 뒤쫓아와 애인이라며 동승, 목적지를 바꾸도록 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이씨는 "지금 생각하면 범인이 처음 타면서부터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남자친구인 척 인상 깊은 연기를 쉬지 않고 해 속아 넘어갔다"고 했다. 이씨는 글 군데군데 '어리석었다' '멍청했다'고 자책했지만 "범인이 탔을 당시에는 당연히 의심을 해 얼굴을 자세히 봤다"며 "나중에 (경찰에) 범인을 확인해줄 수 있었다"고 썼다. 처음 품었던 의심이 결국 진범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한편 전국 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대구지부는 5일 경찰이 택시기사를 살인범으로 몰고 택시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노조는 "경찰이 지난 1주일간 경찰청 공식 블로그 '폴인러브'에 '택시범죄예방수칙'을 올려 택시이용 불안감을 조성하고 택시기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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