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암은 갑상선암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히 늘어 위암을 제치고 암 발병률 1위를 차지했다. 그래도 갑상선암이라고 하면 다른 암에 비해 걱정이 덜하다. 진행이 느리고 치료도 잘 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갑상선암이 '쉬운 암'은 아니다. 진단 후 1년 안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 중 하나가 갑상선 수질암이다.
지난달 24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갑상선 수질암 치료제(성분명 반데타닙)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승인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임상 적용이 빠른 편이다. 수술도 어려워 사실상 치료법이 없던 수질암 환자들에게 희소식이다.
유두암 아니면 치료 어려워
우리나라 갑상선암의 95.1%는 유두암이다(2009년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 자료). 진행이 느리고 예후가 좋고 제일 흔하다고 알려진 바로 그 암이다. 미국암공동협의회(AJCC) 자료에 따르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경우 갑상선 유두암 1~2기의 5년 생존율은 100%, 3기는 96%에 이른다. 4기여도 절반 가까이가 산다. 이에 비해 나머지 갑상선암은 진단도 치료도 매우 어렵다. 갑상선 여포암(국내 전체 갑상선암의 1.5%)과 수질암(0.5%)은 3기 5년 생존율이 80%에 못 미치고, 진단되면 바로 4기인 역형성암(0.2%)은 9%밖에 안 된다. 이들은 유두암에 비해 워낙 환자가 적다 보니 경험 많은 의사들도 잘 구분하기 어렵다.
유두암과 여포암, 역형성암은 모두 갑상선을 이루는 기본적인 세포인 여포세포가 암으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수질암은 다르다. 갑상선에 소량 존재하는 부여포세포(C세포)에서 생긴다. 정재훈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태아 때 갑상선이 만들어지면서 희한하게도 뇌조직의 일부인 신경세포가 들어가는데, 이게 자라나 부여포세포가 된다"고 설명했다.
다른 암과 근원이 다르니 수질암은 진행 과정도 예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암세포로 변형되는 도중의 모양이 워낙 가지각색이라 진단에 애를 먹을 때가 많다. 갑상선 유두암이나 여포암이 일부 다른 조직에 전이된 환자는 갑상선을 떼어내는 수술 후에 방사성요오드를 먹는다. 방사성요오드가 암세포에 흡수돼 전이된 암을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질암세포에는 방사성요오드가 달라붙지 못해 약효가 안 나타난다. 수질암은 또 폐나 간, 뼈 등 멀리 있는 조직에까지도 잘 퍼진다. 이렇게 원격 전이가 되면 수술로 암 부위를 절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늦게 발견된 수질암은 사실상 치료법이 없었던 셈이다.
수질암 진행 억제 가능성
한국을 비롯한 23개국 의료진으로 구성된 임상 연구팀은 반데타닙과 위약을 복용한 갑상선 수질암 환자 총 331명의 암 진행 속도와 생존 기간을 추적해봤다. 그 결과 암이 더 진행되지 않은 채 생존한 기간이 반데타닙 복용 그룹은 30.5개월로 위약 복용 그룹(19개월)보다 길었다. 또 반데타닙 복용 그룹의 45%에서 종양 부위가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이로써 연구팀은 반데타닙 복용이 암의 진행 위험을 약 54%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반데타닙은 암세포를 먹여 살리는 혈관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하고 암세포로 혈액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작용을 한다. 정 교수는 "미국조차 환자들에게 이 약을 쓰기 시작한 건 고작 1년 남짓이고, 유럽에도 현재 쓰는 나라가 얼마 없다. 임상에서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국내 승인이 상당히 빨리 진행된 건 (치료 방법이 없던 수질암 환자들에게)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망 대다수는 역형성암
약물 치료가 가능해진 수질암과 달리 여포암이나 역형성암은 여전히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국내 갑상선암 중 두 번째로 많은 여포암은 양성종양인지 암인지 가려내기가 어려워 진단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여포암과 여포양성종양은 세포 모양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세포가 종양 덩어리나 혈관의 벽을 뚫고 나간 걸 확인해야 여포암이라고 진단할 수 있는데, 어지간한 현미경 조직 검사에선 구별이 쉽지 않다. 수술로 직접 갑상선 부위를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여포암 환자 4명 중 1명 꼴로 원격 전이가 동반된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정확한 진단도 나오기 전에 암이 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암세포라고 다 같은 암세포는 아니다. 갑상선 유두암이나 여포암의 암세포는 수를 늘리면서 어느 정도 고유의 기능을 한다. 방사성요오드를 끌어들이고, 일부는 갑상선 호르몬을 분비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문의들은 유두암과 여포암을 함께 분화암이라고 분류한다.
반면 역형성암은 미분화암이다. 별다른 기능 없이 단순하게 증식만 계속한다. 때문에 갑상선이 급격히 빨리 망가지고 초기부터 원격 전이가 흔히 발견된다. 갑자기 목에 혹이 커지는 바람에 숨 쉬거나 씹는 게 곤란해지고 목소리까지 변한다. 일찍 발견하면 수술로 완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진단됐을 때 이미 암이 퍼져 수술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평균 생존 기간이 3~6개월로 알려져 있다. 실제 갑상선암으로 사망한 환자의 대다수는 역형성암이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유두암과 여포암은 대개 40대 후반, 역형성암은 60대 후반~70대 초반에 많이 생기며, 수질암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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