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종교 인구 분포에서 최근 20년 사이 눈에 띄는 변화는 교세가 정체된 불교, 기독교와 달리 유독 가톨릭 인구가 늘어나는 현상이다. 통계청이 10년마다 하는 인구ㆍ주택 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1985년 186만여명이던 천주교 신자는 1995년 295만명으로, 2005년에는 514만여명으로 증가했다. 개신교인구는 오히려 줄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가톨릭은 개신교를 제치고 불교 다음으로 교인이 많은 종교가 될 수도 있다.
"천주교는 1980년대 후반에 폭발적으로 신자가 늘었어요.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다수가 사회 정의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때 천주교에 호감을 갖거나 개종한 사람도 많았죠. 거기에 영향을 끼친 상징적인 조직은 정의구현사제단이었고, 성직자의 그런 사회 참여 활동을 지금은 각 교구의 사제연대가 계승ㆍ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대리구 사회복음화국장 양기석(42) 신부는 6일 "천주교 지역교구에서 최근 4, 5년 사이 사제연대가 만들어져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양 신부가 몸담은 수원교구에서는 '공동선실현사제연대'가 활동 중이다. 모임이 생겨난 계기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집 재개에 반대한 촛불집회. "아무리 성직자라도 신자들이 살아가는 곳이 세상인데, 그 세상 일을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신부들 몇몇이 느슨한 형태로 '실천'에 관심을 두는 모임을 만들어보자고 시작했지요."
80년대 중후반 민주화운동의 격동기를 겪어낸 이른바 '386' 신부 10명 정도가 한자리에 모였다. 거기서 양 신부는 막내 격이었다. 경기 용인의 보라동성당에서 첫 모임을 갖고 초대 대표로 지금은 미국에서 사목 활동 중인 강정근 신부를 추대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참여'가 당시 강 신부가 있던 경기 안성의 천주교 미리내 성지 근처 미산리 골프장 건설 반대 운동이었다. 신부들이 경기도청 앞에서 노숙 단식 농성까지 벌인 뒤 안성시가 문제가 있었다며 골프장 허가를 취소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지난 정권에서는 유난히 사회적인 갈등 이슈가 많았던 데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공동선실현사제연대의 활동도 쉴 틈이 없었다. 미산리 골프장 반대 운동이 채 끝나기도 전에 4대강 사업 반대에, 서울 용산 참사 집회에 참여했다. 4대강 사업 반대 운동 과정에서는 수원교구 서상진 신부가 중재 대표로 나서 두물머리 생태공원화 사업을 관철시켰다.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쌍용차 해고 노동자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양 신부는 사제연대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를 모임 이름인 '공동선'의 실현으로 설명한다. "천주교에는 사회교리라는 게 있습니다. 성경과 신앙을 바탕으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신앙인답게 살아야 하느냐는 가르침이죠. 그 교리의 핵심이 '공동선'입니다. 아무리 얻는 파이가 크더라도 그 과정에서 손해 보거나 고통 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믿음 가진 사람들이 꼭 실현해야 할 일입니다."
덧붙여 그는 사제연대의 정신이라며 마태복음 25장의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천국과 지옥의 문 앞에서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야기다.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집에 들였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느님이 말하자 의로운 사람들이 의아해 하며 되묻는다. '우리가 언제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언제 나그네이신 것을 보고 맞아 들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을 드렸나이까. 어느 때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느님이 이렇게 대답한다.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다음은 도시 빈민에 손 내미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임용환 신부
수원=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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