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업인 삼성전자에게 승리를, 반대로 자국기업인 애플에게 패배를 안겨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특허침해판결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판결로 삼성전자가 미국 내 특허소송전쟁에서 반격의 기회를 잡은 건 분명하지만, 전세는 점점 더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양사 간 특허소송전쟁에서 최대 격전지는 역시 미국이다. 유럽 쪽 판결은 대체로 싸움을 건 쪽(원고)이 패소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 이는 지나치게 장기화되고 있는 양사의 싸움에 대한 법원의 피로감이 반영된 것이란 게 일반적 시각이다. 때문에 이번 글로벌 특허전쟁은 사실상 미국 판결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단 이번 ITC의 판결로 삼성이 유리한 고지에 오른 것은 확실하다. 지난해 미 캘리포니아 법원의 배심원평결에서 완패를 당한 삼성전자는 이후 배상금액이 일부 감액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크게 불리한 판세였다. 하지만 자국산업보호를 주된 임무로 하는 ITC가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반전의 계기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판결로 수입금지대상에 오르게 된 애플 제품은 총 5가지. 이중 아이폰3, 아이폰3GS, 아이패드는 사실상 매장에서 사라진 구형모델이라, 수입금지의 실효성이 없다. 반면 아이폰4와 아이패드2는 현재도 애플의 온ㆍ오프라인 장터인 애플스토어에서 최소 520달러의 고가로 판매되고 있는데다, 통신망을 빌려 쓰는 알뜰폰 용도로 꽤 활용되고 있어, 이 부분만큼은 애플의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애플의 방어논리가 무너진 점이 더 고무적이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특허가 '표준특허'이고, 표준특허는 누구든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프랜드(FRAND)'원칙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더 이상 특허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ITC가 이 논리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한 특허전문가는 "다른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행사 여부다. ITC의 판결은 대통령이 수입금지요청을 수용할 때만 효력을 내는데, 미 의회 일각에선 자국기업인 애플보호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행사를 통해 노골적 애플 감싸기에 나서기는 힘들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실제로 지미 카터 행정부 이래 30여년 간 ITC판정을 거부한 사례는 사실상 없다. 따라서 전량 해외에서 생산되는 애플제품 5종은 수입금지를 통해 미국 내 판매가 봉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삼성전자 쪽으로만 기운 건 아니다. 삼성전자 역시 피고자격으로 2개월 뒤 ITC 심판을 받아야 한다. 애플은 2011년 7월 삼성전자가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ITC에 수입금지를 요청했고, ITC는 이미 지난해 10월 예비판정을 통해 특허 4건에 대해 삼성의 침해를 인정했다. 때문에 8월 1일 열리는 최종심리에서 ITC가 애플이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이번 애플패배에 대한 미 의회 등의 반발이 거세질 경우, 삼성전자는 그 역풍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세계 스마트폰 시장 1, 2위를 다투는 양사 제품이 나란히 미국 내에서 판매금지 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수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양사의 화해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허소송에서 이겨 수입금지 조치가 이뤄져도 사실상 구형 제품이 대부분이라 실익이 없고, 분쟁 과정에서 기업 기밀이 일반에 공개되는 일이 많아 더 이상 싸움의 이득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 모두 끝없는 특허싸움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타협의 길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감정의 골이 깊고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당장 소송을 중단하거나, 협상테이블이 꾸려질 것 같지는 않다. 이 관계자는 "당분간 소송은 지속하되, 더 이상 확전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협상여지를 넓혀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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