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개봉하는 블록버스터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암울한 미래와 우주를 노래한다. 지난 몇 년 간 슈퍼히어로들의 격전장이었던 여름 시장이 올해는 내용 면에서 확연히 색깔을 달리한다. 이번 시즌 할리우드 영화들의 특징은 지구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주로의 세계관의 확대라 할 수 있다.
윌 스미스 부자가 출연한 '애프터 어스'는 1,000년 후의 지구가 배경이다. 대재앙 이후 모든 인류가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 뒤 황폐해진 땅으로 지구를 그린다. 슈퍼맨의 새로운 해석인 '맨 오브 스틸', 외계 괴물과 맞서 지구연합군이 준비한 거대 로봇의 싸움인 '퍼시픽 림'도 지구의 위기를 끌어 안는다. 원인 불명 좀비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세계가 초토화되는 '월드워 Z'는 종말의 공포를 정조준하는 영화다.
지구 종말 소재의 대작이 유독 많은 것은 시대적으로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적극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끝 모를 불황과 쓰나미, 지진, 토네이도 등 감당할 수 없는 환경적인 재난이나 질병,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무차별 테러 등으로 불안한 정서를 포착해 영화로 오락화하는 것이다.
경제 위기의 또 다른 얼굴인 양극화도 할리우드가 눈독을 들이는 소재다. 8월 개봉 예정인 '엘리시움'은 지구를 떠나 호화로운 우주정거장 엘리시움에 사는 1%의 상류 계층과 황폐해진 지구에 남겨진 하층민들의 갈등을 그리며 현재 고착화하고 있는 계급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꼬리칸에 배정된 최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앞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도시 하나 붕괴되는 데 이미 익숙해져 버린 세상이라서인지 영화의 시선은 이제 좁은 지구를 넘어 우주를 무대로 한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3D 등 급속하게 발전한 촬영 제작 기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결국 방대한 우주까지 나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기술 개발 덕분에 그 동안 표현하기 쉽지 않았던 우주를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개봉한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 섬세한 3D 등 첨단 기법이 활용됐지만 드라마에 현란한 기술 사용이 넘치다 보니 되레 번잡스럽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트렉 다크니스' 등에 활용된 아이맥스나 3D 등은 이 기술들이 제대로 쓰이면 얼마나 놀라운 스펙터클을 선사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 건 이러한 기술 덕분이다.
정지욱씨는 "지난 달 미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한 '소행성 포획'같은 우주 개발 계획들이 영화 속 미래의 우주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며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다른 행성에서 삶의 터전을 꾸릴 수 있다는 건 그런 기술들에서 쌓이는 희망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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