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트, 베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을 거느린 '프랜차이즈 공룡' SPC그룹이 연간 60억원에 달하는 신용카드 결제 업무를 사주 아들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몰아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SPC 가맹점과 카드사 간 통신망을 구축해 사업하는 중소 부가통신사업자(VANㆍ밴)를 몰아내고 사주 일가가 직접 밴사를 차린 것으로, 사실상 자녀들에게 독점적으로 일감을 몰아줘 편법 증여의 통로로 쓰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4일 신용카드 밴 업계 및 유통업계에 따르면 SPC 계열 밴사인 SPC네트웍스는 2009년부터 파리바게트 등 SPC그룹 계열 가맹점의 약 80%에 신용카드 단말기를 공급하고 결제시스템을 거의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SPC그룹 계열 가맹점이 전국 5,500여 곳에 달하고 밴사가 결제 건당 100~110원을 카드사에게서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SPC네트웍스가 거둬들이는 수익은 최소 연간 60억원에 이른다. 특히 SPC 가맹점들은 신용카드 결제 비율이 높아 월 결제건수가 1,000건을 훌쩍 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SPC네트웍스는 허영인 SPC그룹 회장 일가가 지분의 60%를 보유한 비상장사다. 허 회장과 그의 아들 허진수, 허희수 SPC그룹 상무가 지분의 20%씩을 보유 중이며 나머지 40%는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파리크라상이 소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심혈을 기울여 단속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의 전형적인 사례다.
다만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하는 공정거래법 제23조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른 경쟁 밴사와 비교한 거래 가격 등이 '현저히' 유리한 조건이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입증하기가 만만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부당성'이라는 측면에서 경쟁제한 행위가 있었는지도 따져봐야 하는데, SPC네트웍스의 경우 연매출이 60억원으로 규모가 작아서 경쟁제한 기준을 적용하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금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장치에는 허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부당한 계열사 지원 행위나 경쟁제한 요소가 있었는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7월부터 신고를 받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11년 개정된 상속ㆍ증여세법 제45조 3항에 따라 '계열사와의 거래비율이 30%를 초과하고 지배주주와 친족의 주식보유 비율이 3%를 초과할 경우' 해당 지배주주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하게 된다. 부과세율은 거래비율 30% 초과분에 대해 주식비율과 이익규모에 따라 10~50%가량이다. 한 세무 전문가는 "SPC네트웍스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가 증여세 과세 대상인 것은 맞지만, 그 금액은 사주와 아들 모두 1,000만원 안팎에 불과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채이대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현행 법 규정으로 제재가 쉽지 않더라도, 우월적 지위의 대기업이 중소기업 업종을 침범해 밥줄을 끊는 건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SPC네트웍스가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하는 사이 주로 SPC 가맹점을 상대로 영업해 온 직원 35명 규모의 중소 밴 업체는 매출이 30%나 급감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SPC의 이런 행태는 사주가 자녀들에게 재산을 편법 증여하기 위한 시도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SPC그룹이 계열사를 상장시킨 후 모회사와 합병하는 방법으로 자녀에게 편법 증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SPC그룹 허 회장의 장남과 차남은 지난해 계열사 지분과 ㈜파리크라상의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지주회사 격인 파리크라상의 지분 비율을 높인 바 있다.
SPC그룹 측은 "카드 결제건수가 폭증하는 크리스마스 등 특정 시즌의 전산장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접 밴 사업에 뛰어든 것일 뿐"이라며 "영세 밴 업체의 참여 비중을 높이는 등 동반성장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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