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가 5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정 총리는 새 정권의 초대 총리로서 비교적 무난하게 국정을 관리했다는 평가도 받지만 '책임총리'에는 크게 미달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 총리는 정부출범 지연에 따른 행정공백을 탈없이 메웠다는 점에서 우선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의 도발위협이 고조되던 상반기 정부의 단호한 대응태세를 점검하는 등 드러나지 않은 공도 평가의 대상이다. 소탈한 이미지에 걸맞게 사회취약계층에 관심을 갖거나 비공개 기부활동을 하고 차량이동 시 교통통제를 파격적으로 줄이는 등 '서민총리'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외교무대 데뷔전이었던 지난달 태국 방문에선 우리 기업의 태국 물 관리사업 수주 지원활동을 펼치고 잉락 친나왓 총리와의 회담에서 자신이 제안한 '한-태 경제협력위원회' 구성을 성사시키는 등 외교 분야에서도 성과를 냈다.
하지만 100일 동안의 공(功)보다는 과(過)가 더 부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 총리는 특히 각종 현안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충실하면서 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책임총리와는 거리가 멀게 행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총리 본연의 임무인 갈등관리 등 안방살림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정책조정 기능에서 총리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 총리는 '국민 곁의 총리'란 슬로건에 맞춰 취임 후 4일까지 21차례의 현장 방문과 8번의 각계간담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진주의료원, 밀양 송전탑, 개성공단 피해 입주기업,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 정작 갈등이 빚어지는 현장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실제 정 총리는 숭례문 복원현장 방문(3월2일)과 천안함 유족 위로방문(3월30일) 등 대부분 의례적인 행사에 참석했다.
대신 박 대통령의 관심 내지는 지시사항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집중했다. 박 대통령이 원전비리에 대해 엄단 방침을 내리자 정 총리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천인공노할 중대한 범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흥분했다. 전기절약을 호소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려다 돌연 연기한 배경에도 철저한 조사가 우선이라는 청와대의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정 총리는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김황식 전 총리와 자주 비교 대상에 오른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 전 총리가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책임지는 동반자였다면 정 총리는 '왕명출납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정 총리는 이날 저녁 국무조정실 소관 국회 상임위인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들을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갖고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한 협조를 당부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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