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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 떴다하면 '저승사자' 소리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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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 떴다하면 '저승사자' 소리 들어요"

입력
2013.06.0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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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11시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앞에 늘어선 수십 개의 천막들이 일제히 노란색 불빛을 내뿜었다. 하루 거래액만 수억 원. 국내 최대'짝퉁시장'으로 꼽히는 노점상 거리다. 폭 3m 남짓한 인도는 심야 쇼핑을 즐기러 온 인파로 가득찼다.

정정재(47) 서울 중구청 시장경제과 주임이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직원들과 함께 이 곳에 나타나기 전까지 상인 방모(34)씨도 이태리 고가 브랜드 D사의 로고가 박힌 짝퉁 티셔츠 수십 장을 진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 뒤 이웃 상인으로부터 "그가 떴다"는 말이 전달됐고, 방씨는 커다란 가방에 황급히 물건들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새 정 주임이 방씨의 뒤를 막아 섰다. "먹고 살려는 사람들한테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며 삿대질을 해대는 주변 상인들의 항의에도 정 주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날 방씨의 가방에선 정품가 2,000만원 상당의 짝퉁 티셔츠들이 쏟아져 나왔고, 전량 압수 조치됐다.

'짝퉁 천국'으로 불리는 한국, 그 중에서도 위조상품 유통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명동, 남대문, 동대문 시장의 노점상에게 정 주임은 '저승사자'로 통한다.

암시장 전문조사 사이트인 '하보스코프닷컴(havocscope.com)'에 따르면 한국의 위조상품 시장은 260억달러(약 29조원) 규모. 세계 11위에 해당한다.

정 주임이 명동, 동대문시장 일대에서 본격적으로 단속을 시작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적발한 짝퉁만 4만여점. 정품가격으로 무려 250억원에 달한다. '어차피 못 없앤다'는 인식 때문에 단속에 소극적이었던 시절 짭짤한 돈 맛을 봤던 짝퉁 노점들이 정 주임의 등장 이후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정 주임은 단호하고 끈질기게 짝퉁 단속을 하는 '독종'이다. 명동에서 물건을 버리고 도망친 짝퉁 상인을 8시간 넘게 기다려 새벽 1시쯤 붙잡아 고발한 적도 있다. 침 뱉고 욕설하는 상인들에게 둘러싸여 협박과 폭행까지 당했지만 주말 휴일도 반납하고, 새벽마다 단속에 나서는 그다.

한국의 짝퉁 시장에 수년 간 골머리를 앓았던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정 주임에게 지난해 11월부터 2명의 상표법 전문가와 단속차량을 지원하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중구청이 적발한 1만2,214점의 압수물 중 68%가 샤넬과 루이비통 등 유럽 브랜드다.

짝퉁을 파는 생계형 노점상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정 주임은 가짜 상품 때문에 품질 좋은 국내 브랜드의 입지가 좁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주임은 "터무니 없이 저렴한 가격에 해외 명품 브랜드와 똑같이 만든 물건을 파는데 누가 국산을 사겠냐"며 "짝퉁 상인들 먹고 살게 하겠다고 국내의 성실한 기업들을 망하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 주임은 "명품브랜드의 짝퉁 지갑을 쓰레기 봉지에 담아 세워두거나 샘플만 꺼내 놓고 구매의사를 밝힌 손님과 물건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등 짝퉁 판매 수법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며 "가족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상인들의 협박을 들을 땐 여전히 상처를 받지만 짝퉁 판매는 남의 디자인을 훔치는 범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짝퉁 근절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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