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 전국 각 지역 주민센터나 학교 앞에는 투표를 하기 위해 아침부터 길게 늘어선 행렬로 붐빈다. 투표장 안에 들어선 유권자는 신분증과 선거인 명부에 오른 자신의 이름을 대조한 뒤 밖에서는 볼 수 없도록 흰 천으로 가려진 기표소로 들어간다. 그리고 잉크가 묻은 투표기구를 원하는 후보의 이름이 적힌 칸에 찍는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다 바뀌었지만,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투표장 모습은 1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과연 미래에도 이런 투표장 광경은 변하지 않고 계속될 수 있을 까. 일각에선 디지털기기가 보편화되면서 국회의원선거나 대통령선거도 PC 혹은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기기로 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와 KT는 4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서 '온라인 투표서비스 제공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유권자가 투표소에 가지 않고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해 각종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 구축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온라인 투표방식은 기존 종이투표의 기본 형식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옮겨왔다. 선거주관단체는 선거 사이트에 선거인 명부와 안건, 후보자를 등록한 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참여를 독려한다. 이후 유권자는 자신의 PC나 스마트기기로 선거 사이트에 접속, 공인인증서 일회용비밀번호(OTP) 아이핀(I-PIN) 등 각종 인증방식을 통해 본인확인을 거친 뒤, 표를 던진다. 종이투표가 아니기 때문에 수작업에 의한 검표도 필요 없어, 투표결과는 자동으로 집계되고 통보된다. 이 과정에서 KT는 투표가 한꺼번에 폭주하는 데 따른 접속지연방지 등을 위해 대용량 저장서비스인 클라우드시스템을 제공한다.
선관위와 KT는 우선 민간부문에서 실시되는 소규모 투표에서 이런 온라인 투표를 시범 실시해볼 계획이다. 7월부터 초ㆍ중ㆍ고교 선거, 아파트 동대표 선출 등 일정 정도 공공성이 요구되는 민간 생활선거나 공공부문 정책결정 투표 등에서 활용해볼 예정이다.
관심은 이런 온라인투표가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나아가 대통령선거 등 공직선거에까지 확대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확실히 장점은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갈수록 투표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PC나 모바일기기를 통한 선거는 투표장까지 가야 하는 번거러움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투표율 제고에 큰 도움이 되고 그만큼 참여 민주주의 구현에도 긍정적이란 평가다. 또 투ㆍ개표작업이 간편해져 선거비용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온라인 투표 하에서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 등 4대 선거원칙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 관계자는 "스마트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할아버지를 대신해 손주가 투표해준다면, 가족이든 지인이든 서로 모여 투표를 한다면, 민주선거의 기본 원칙이 깨지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해킹을 통해 투표나 개표가 조작된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파장이 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선관위도 최소 수십만명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대단위선거에는 아직 온라인 투표를 적용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소규모 민간투표에서 시범실시가 시작된 만큼, 당장은 아니더라도 토론과 보완을 거친다면 언젠가는 투표범위도 확대될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KT가 투표서버에 대한 방화벽 등 보안체계 구축에 집중하고 본인확인을 위한 이중삼중의 시스템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선관위도 공직선거의 전자 투ㆍ개표시스템 도입시 보안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지원책도 마련할 것" 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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